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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끊어, 이 사기꾼아! / 김회승

등록 2014-01-21 18:47수정 2014-01-21 20:52

김회승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김회승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지난 주말 많이 당황했다. 아내가 사용중인 국민카드와 롯데카드 홈페이지에서 정보유출 내역을 조회했다. 신상정보는 물론이고 카드번호와 유효기간, 결제계좌번호까지 유출됐다. 혹시나 하고 내 이름도 조회했다. 만든 적 없는 롯데카드에서 카드번호와 유효기간이 유출됐단다. 아내는 주 사용 카드라며 불안해했다. 나는 도대체 어떤 카드 정보가 샜는지부터 알아야 했다. 하지만 콜센터는 사흘째 모든 상담원이 통화중이다.

거의 전국민의 개인정보가 맥없이 털렸다. 사건의 경위, 원인과 책임, 2차 피해 등에 대한 소식이 쏟아지는데, 금융을 꽤 오래 취재해온 기자로서 허탈감과 함께 책임감마저 느껴진다. 금융회사가 사실상 부도난 어음을 불특정 개인에게 팔아넘긴 동양 사태가 바로 엊그제 일인데, 이번엔 고객의 금융정보를 마구잡이로 쌓아놓고 돌려쓰다 사달이 났다.

이번 일은 무분별한 외주화가 부른 예견된 재앙에 가깝다. ‘김미영 팀장’이 무차별적으로 신용대출 문자를 뿌릴 때 이미 예고된 일이다. 금융사들은 지난 몇 년새 사설 모집인을 크게 늘려 수익성을 높여왔고, 사실상 자영업자인 김미영 팀장은 어느새 수십만명으로 불어났다. 금융당국은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소비자 편익에 도움이 된다며 모집인 영업을 사실상 방치했고, 금융사들은 고객정보를 통째로 모집인한테 넘겨가며 이익을 키우는 데만 골몰한 결과다. 수익 극대화가 목표이니, 금융의 본질인 신뢰와 안전이 눈에 들어오겠는가. 안타까운 노릇이요, 소탐대실의 전형이다.

개인정보에 대한 정부의 시각도 확 달라져야 한다. 올해 8월부터는 주민번호를 유출하면 최고 5억원의 과징금을 물릴 수 있도록 개인정보보호법이 강화된다고 한다. 그러나 1년에 많게는 조 단위 이익을 내는 대형 금융사들이 과연 과징금 5억원을 무서워할까 싶다. 미국의 신용정보회사 초이스포인트는 14만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대가로 1500만달러를 과징금과 보상금으로 물어낸 적이 있다. 뉴욕 증시 상장기업은 사베인스-옥슬리법에 따라 정보유출 피해액의 몇 배수를 배상하게 돼 있다. 현실적으로 보안사고를 사전에 원천적으로 막을 순 없다. 하지만 일단 사고를 내면 회사 문을 닫을 정도의 징벌적 제재를 각오하게 해야 한다. 시이오가 사표 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번 일은 단순한 금융 사고가 아니다. 디지털 시대에 개인정보가 엄격히 통제되지 않으면 어떤 문제를 일으킬 지 모른다는 점을 냉정히 되돌아봐야 한다. 단지 개인정보를 다루는 곳들이 내부 관리를 강화하고 보안 장비를 고도화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개인정보가 돈이 되는 시대다. 글로벌 기업들은 수억명의 ‘빅데이터’를 축적해 정보 장사를 하려 혈안이 돼 있다. 머잖은 미래에 나의 ‘디지털 흔적’을 추적해 내 취향에 맞는 음식점과 놀거리를 찾아주는 서비스가 상용화될 것이다. 하지만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은 여기저기 산재해 있고 기준도 들쑥날쑥하다. 유럽처럼 ‘잊혀질 권리’의 법제화 등 사회적 공론을 시급히 만들어가야 할 때다.

미국에 1년 동안 머물 때 서부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찾으려다 인출이 금지돼 당황한 적이 있다. 콜센터로 전화를 했더니 거주지에 인접한 주를 벗어나 현금 인출이 발생하면 부정사용으로 간주해 자동으로 인출이 금지된다고 했다. 본인 확인을 한 뒤 앞으로 멀리 여행을 갈 땐 미리 은행에 알려달라는 안내도 함께 받았다. 대형마트에서 꽤 비싼 물건을 산 다음날에도 은행에서 전화가 왔다. 평소 결제액보다 훨씬 커 확인하는 거였다. 이런 전화라면 개그 코너에서처럼 ‘끊어, 이 사기꾼아!’ 소리를 듣지는 않을 거다.

김회승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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