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백 연세대 인문한국(HK) 교수
정부가 역사교과서에 관한 근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뭔가 개선책을 마련하겠다니 반가운 일인데, 진단과 대책이 잘못되고 있다.
이번 검정파동은 수정을 거쳤지만 지금도 내용의 오류가 발견되고 있는 교학사판 교과서가 검정에 통과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검정 기간이 4개월로 짧았고, 정부에 검정심사 예산이 없었으며, 업무를 총괄한 전문인력도 부족하다는 점 등이 부실 검정의 원인으로 말해져 왔다. 한마디로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고등학교 한국사 검정심의회 심의위원은 검정위원과 연구위원으로 구성되어 왔다. 연구위원은 내용조사, 표기·표현, 편집디자인 담당으로 구분된다. 2011년도 심의위원은 모두 35명이었고, 그중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검정위원이 11명이었다. 이번에는 심의위원 26명 가운데 검정위원이 6명에 불과하였다. 표기·표현 담당 위원은 동아시아사 3종, 세계사 4종까지 맡았다. 2011년도에 검정을 신청한 교과서는 13종이었고, 이번에는 9종이었다. 아무리 수익자 부담 원칙이라고 하더라도 검정심의회를 운영할 예산에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정부는 위원을 더 늘려야 하는데 오히려 줄인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한 적이 없다.
6명의 검정위원 가운데 한국사 전공자는 3명에 불과하였다. 역사교과서에서 조사 하나가 매우 색다른 역사상을 전달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현대사 전공자가 근대사까지, 고대사 전공자가 고려시대까지 세세하게 짚을 수 없음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검정위원의 전공을 벗어나는 영역은 내용조사를 담당한 연구위원이 메울 수 있으나, 그것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심지어 조사한 내용을 검정위원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반영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많은 오탈자가 발견되었는데도 100점 만점에 40점이 배당된 ‘내용의 정확성 및 공정성’을 통과한 교과서가 나온다는 것도 있을 수 없다. 검정위원의 검정 임무에 권한과 자율성이 있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중·고교 역사교과서의 검정은 국사편찬위원회가 책임져 왔지만, 결국에는 교육부에서 파견한 연구사, 그리고 교육과정평가원의 관리하에 검정심사가 이루어진다. 교육과정과 입시를 담당하는 기관이 인력을 안정적으로만 운영한다면 검정심사는 정확히 관리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운영의 문제이지 예산과 심사기간의 문제는 아니다. 제도나 시스템 자체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고 교육부의 주장처럼 검정조사관을 두어 편수기능을 강화하는 것도 대안은 아니다.
우리가 일본의 양심이라 부른 이에나가 사부로 교수는 교과서 검정에 대해 회고한 적이 있다. “1972년의 검정은 사실상 심사적인 성격이 거의 없고, 사실 관계의 오류 등에 한정”한 ‘소프트한 검정’이었는데, 1980년과 1981년의 검정 때는 1963년에 자신의 교과서가 “불합격 처분을 받았을 때의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검정으로 퇴보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엄격”하였다. 그 결과 1982년 국제교과서파동으로 이어졌다. 일관성이 없는 검정심사의 중심에 황국사관의 학문적 계보를 잇는 검정조사관이 있었다.
검정조사관은 한 교과서에 교사 2인, 전문가 1인으로 구성된 조사원의 내용 조사를 참조한다. 하지만 서로 누구인지도 모를 정도로 드러나지 않아 ‘복면(覆面)조사원’이라고도 한다. 9종 교과서의 내용 조사를 8명의 위원이 하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된다.
좋은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것은 역사교육의 질을 높이는 한 과정이기는 하다. 그러나 진정한 지름길은 교육의 자치성, 정치적 중립성, 그리고 학문적 자율성을 보장하는 데 있다. 그래서 교육부도 ‘교과서 선진화 방안’의 하나로 인정도서를 늘려 오지 않았는가. 교육부는 어떤 ‘지원’ 제도를 보완하면 좋은 교과서를 만들 수 있는가에 정책의 초점을 모아야 한다. ‘작전’처럼 비치는 언행은 그만했으면 한다.
신주백 연세대 인문한국(HK)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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