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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주 칼럼] 영화 ‘변호인’, 끝나지 않은 이야기

등록 2014-01-14 19:02수정 2018-05-11 15:15

김선주 / 언론인
김선주 / 언론인
영화 <변호인>을 보는 동안 고통스러웠다. 70년대의, 잊었던 기억들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 온몸을 여기저기 헤집고 다녔다.

같이 영화를 본 동년배의 남자는 영화가 끝나자 쌍시옷으로 시작되는 욕부터 하고는 ‘역사가 되풀이되는가…’ 했다. 또 다른 친구는 80년대에 거리에서 보냈던 자신의 대학 시절을 기억하며 감회에 젖은 듯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변호인>의 상업적 성공은 놀랍다. 폭발적으로 관객이 늘 만한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시대를 가혹하게 겪은 사람들은 영화의 배경인 시대에 대한 천착이 미흡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돈 벌어 가족 고생 안 시키고 살려던 소박한 꿈을 가진 그저 그런 변호사 노무현이 인권변호사로 변신하는 과정에, 그 뒤 대통령이 되기까지 또 그의 불행한 죽음까지를 안타깝게 기리는 사람들은 영화가 할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싱겁게 끝났다고 느꼈을 것 같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의 영화라는 감독의 말은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드라마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나 역시 이 영화의 검사가, 판사가, 법정이, 국밥집 아들이 모두 현재진행형으로 느껴졌다. 모든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과 슬픔, 그리고 회한, 잊고 싶었던 기억을 건드린 영화이고 70년대를, 유신시대를, 2014년을 고발한 영화라고 보았다. 젊은 사람들은 프랑스의 2월 혁명을 그린 <레미제라블> 영화를 보듯 우리나라 현대사에도 그런 시절도 있었구나 하며 먼 옛날의 이야기로 보았을 수도 있다.

감옥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고 데모 한번 해본 적도 없는 70년대를 보냈지만 70년대는 상상만으로도 온몸이 떨린다. 71년의 제1차 사법파동, 전태일 분신 사건, 언론탄압과 통폐합, 부마사태, 긴급조치 9호… 데모를 해서도 안 되고 했다는 기사를 써도, 했다는 말을 전해도 감옥에 가는 시대였다. 고문을 당한 사람은 결코 그 기억을 치유할 수 없다고 정신과 의사들은 증언한다. 몸이 그것을 기억한다고 한다. 나 역시 몸이 그 시대를, 그 공포를 기억한다. 사회 전체가 고문을 당했기 때문이다.

1979년 ‘유신독재 물러가라’ ‘박정희는 하야하라’는 구호를 외친 부마사태 때 박정희의 경호실장 차지철은 탱크 몇대 보내서 깔아뭉개자고 하였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때 300만을 죽였는데 30만 정도 죽여도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일주일 뒤 박정희는 죽었다. 영구집권을 꾀하던 유신시대가 끝났다. 뒤를 이어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부마사태 때 군대를 동원하지 않았던 것이 천추의 한인 듯 광주에 군대를 투입했다. 1987년의 박종철 고문 사건…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변호인>에 나오는 차 경감 같은 인물이 실제로 그렇게 했던 시대였다. 고문으로 죽은 것이 밝혀진 다음 6·10항쟁이 일어나고 6·29가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긴 군사독재의 시대가 지났다. 이것이 영화의 배경이고 영화의 진실이다.

영화를 보고 후배가 원고 하나를 보내왔다. 1979년 긴급조치 9호로 감옥에 갔다가 박정희가 죽고야 출소한 경위를 꼼꼼히 기록한 글이다. 그 친구는 고향에서 교사 발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달 동안 불법 구금되어 스물두 살 여성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던 그는 어찌어찌 살아남아 자신은 교사는 못 되었지만 사회생활을 했는데 영화가 잊고 싶었던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고 한다. 당시의 후유증으로 정신이상이 되거나 결코 사회생활을 못 하고 세상에서 사라진 친구들을 생각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며 살아남은 자의 슬픔 때문에 온몸이 저려서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고 했다.

최근 부림사건 때 검사였던 인물이 불법 구금도 고문도 없었고 노무현은 듣보잡이었고 민주인사는 간첩이었고 모든 시국사건은 북한과 연결되어 있고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는 좌경세력이라고 했다. 요즘 말로 다 종북좌빨이라는 것이다. 역사는 얼마든지 조작되고 왜곡된다. 현대사 교과서를 기어코 다시 쓰려는 시도가 바로 그것이다.

유신시대가 34년이나 지나서,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되는 70년대를 떠올리며, 2014년 이후 많은 국밥집 아들딸들이 나올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상상으로만 끝나길… 살아남은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를 깊이 생각한다.

김선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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