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섭 오피니언부장
로마와 카르타고가 지중해 패권을 놓고 다투던 제1차 포에니전쟁(기원전 264~241)이 중반에 접어든 때였다. 로마 군단 최고사령관은 콘술(통령·집정관)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였다. 레굴루스의 군대는 기원전 256년 시칠리아 남쪽 바다에서 카르타고 해군을 격파한 뒤 아프리카 본토로 진격해 수도 카르타고 동쪽에 진을 쳤다. 이듬해 봄 전열을 재정비한 카르타고 군대가 코끼리 떼를 앞세워 레굴루스의 진영을 덮쳤다. 레굴루스는 카르타고 코끼리 부대와 맞서다 8000명의 병력을 잃었다. 레굴루스 자신은 포로로 붙잡혔다. 전쟁을 끝내고 싶었던 카르타고는 레굴루스를 강화사절로 삼아 로마로 보냈다. 원로원을 설득하는 것이 레굴루스의 임무였다. 로마로 떠나기 전 레굴루스는 임무를 마친 뒤에 카르타고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원로원 의원들 앞에 선 레굴루스는 카르타고가 강화를 원하는 것은 약점이 있기 때문이니 이런 때일수록 더욱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로마는 레굴루스의 호소를 받아들여 카르타고의 강화 제의를 거부했다. 레굴루스는 애초에 한 약속대로 카르타고로 돌아갔다. 카르타고인들은 레굴루스를 사방에 못이 박힌 둥그런 통 속에 집어넣고 코끼리들에게 걷어차게 하여 죽였다. 뻔히 목숨을 잃을 줄 알면서 조국을 위해 행동하고 명예롭게 약속을 지킨 레굴루스는 로마 군인의 표상이 되었다.
레굴루스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 땅의 ‘보수’라고 자임하는 세력의 몰골이 떠오른다. 나라를 팔아넘기고 작위 받아 호의호식한 사람들, 일제의 편에 서서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이고 애국지사들을 고문하던 사람들, 그 친일파들을 대거 끌어들여 독재체제를 세우고 민주주의를 짓밟은 사람들…,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는 <대한민국사>에서 일갈한다. “그들은 정녕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기득권을 버린 적도 없고, 희생한 적도 없다. 한국전쟁 때 마오쩌둥도, 미8군 사령관 밴플리트도 아들을 바쳤지만 그들은 한강 다리를 끊고 가장 먼저 도망갔다가 돌아와 남은 사람들을 부역자로 몰았다.” 이 자칭 보수세력에게서 레굴루스의 책임감·정직성·조국애를 찾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레굴루스처럼 로마의 콘술을 지낸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국가’에 대한 고전적인 정의를 내린 사람이다. 키케로가 말하는 참된 국가는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 곧 공화국이다. 공화국이란 공동의 법과 공동의 이익으로 결속된 인민 전체의 공동체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소수 특권층을 위한 나라는 공화국이 아니다. 키케로는 단언한다. “폭군이 지배하는 곳에는 나쁜 공화국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화국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말의 뜻을 정확히 알려면 반대말을 살펴보는 것이 유익하다. ‘레스 푸블리카’의 반대말은 ‘레스 프리바타’(res privata)이다. 레스 프리바타는 사적인 일,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뜻한다. 사익 추구야말로 레스 프리바타의 본령이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괴로움은 레스 프리바타가 레스 푸블리카를, 사익이 공익을 압도했다는 사실에 있다. 지배자들이 국가를 공공성 실현의 마당이 아니라 사익 추구의 싸움터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 우리 현대사의 비참이다. 이 나라에서 역사의식·민족혼 같은 보수적 가치를 지킨 것은 ‘보수세력’이 아니라, 위장보수와 맞서다 어쩔 수 없이 진보가 되고 만 양심세력이었다. 이번 교학사 역사 교과서 퇴출 운동은 친일과 독재를 정당화한 위장보수세력의 뻔뻔함에 대한 탄핵이 본질이다. 시민과 학생, 곧 나라의 주인들이 상식의 힘으로 이 정신의 불량식품을 몰아냈지만, 사익 추구에 눈이 먼 위장보수의 지배가 계속되는 한 공동의 기억을 훼손하여 역사를 사유물로 만들려는 시도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고명섭 오피니언부장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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