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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전체주의와 생각의 힘 / 김종대

등록 2014-01-09 18:42수정 2014-01-10 13:49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2차 대전 당시에 대량학살을 자행한 나치 전범 중 한명인 아돌프 아이히만이 1963년에 체포되어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나치의 학살을 증언하기 위해 수많은 유대인이 법정에 나와 나치의 만행을 고발하기 시작했다. 이때 놀라운 사실이 발견된다.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인들 거의 대부분은 이송 지점에 정시에 도착했고, 제 발로 처형장까지 걸어가며, 자신의 무덤을 파고, 옷을 벗어 가지런히 쌓아놓고 총살당하기 위해 나란히 눕기까지 한다. 이상할 정도로 저항이 없었다. 재판 당시 검사들이 증인을 향해 묻는다.

“왜 당신은 저항하지 않았습니까?” “왜 당신은 기차에 탔습니까?” “1만5000명의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고 수백명의 간수들만 당신과 마주하고 있는데 왜 당신은 폭동을 일으키거나 비난하거나 공격하지 않았습니까?

이에 대해 쉽게 대답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추방될 유대인의 명단을 작성한 것도 유대인 대표들로 이루어진 유대인 위원회였으며, ‘최종적 해결’로 불린 유대인 멸절에 적극 협력한 사람들도 유대인 자신이었다. 나치 제국에 재산을 헌납하고, 일단 죽음을 면할 명망가 유대인을 선발하는 정책도 그들의 일이었다. 나치 간부와 이들 유대인은 우호적으로 협력했다. 수용소에서 유대인에 대한 사형집행인도 유대인이었고, 시체를 처리한 것도 유대인이다. 그런데 유대인이 나치에 저항했다는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왜 저항하지 못했을까?

이 재판을 지켜본 독일 유대인 출신인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즉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집필한다. 지난 세기에 가장 논쟁적인 저술이자 2000년까지 이스라엘에서 금서였던 이 책에서 아렌트는 분석한다. 가해자인 나치나 피해자인 유대인 공히 ‘생각하는 방법’을 잃어버렸고, 그것을 잃어버리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살인하지 말라’는 양심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방법, 곧 ‘생각하지 않는 방법’을 전체주의 체제로부터 배워버린 것이다. 국가가 개인의 양심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준 것이다. 나치가 학살을 할 때 염소가스는 오히려 인간적인 조처였다. 수용할 수 없는 유대인을 고통 없이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가스는 ‘불필요한 고통’을 면제해주는 수단이었다. 가스로 살해하라는 총통의 명령을 수행하는 나치의 하수인들은 자부심도 느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고, 단지 국가의 명령을 수행한다는 의무감이 충족되었기 때문이다.

국가주의자들에게 국가가 신성한 권위를 갖는 이유는 바로 국가가 자기 개인의 양심의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가의 합법적인 명령이라면 정당성 여부를 따지지 말고 복종해야 한다. 그래서 정보기관원들은 대선에 개입했다. 그러나 양심은 국가나 자신이 속한 조직이, 또는 법이 해결해주는 문제가 아님을 알아야 했다. 그것은 오직 생각할 줄 아는, 스스로 존엄성을 아는 개인만이 해결할 수 있다. 이것을 부정하는 사회는 바로 전체주의 사회다.

최근 국가의 권위에 종교적 신성함을 부여하려는 극단적 국가주의자들의 모임에 대한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한 정보기관의 송년 회식에서 “통일 위해 다 같이 죽자”며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는 희한한 풍경이 그것이다. 이건 진보당의 지난해 5월 ‘좌파 아르오(RO) 모임’에 비견되는 ‘우파 아르오 모임’처럼 보인다. 이후 요즘 공무원들이 애국가 4절까지 외우느라고 고생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국가 정통성을 강조한다는 역사 교과서도 다 좋다. 국가안보를 위해서라는데. 그러나 그 대신 양심의 명령에 따르는 개인의 존엄성도 똑같이 강조하라. 그게 자유민주주의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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