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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는 법조인 / 백태웅

등록 2014-01-05 18:39수정 2014-01-06 16:17

백태웅 미국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
백태웅 미국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
영화 <변호인>이 상영 시작 후 불과 17일 만에 7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다. 시국사건의 피해자를 대변하는 인권변호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을 모티브로 한 영화가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니 무엇보다 반가운 일이다.

평범한 변호사 노무현을 인권투사로 나서게 했던 부림사건 이후 3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 법조계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87년 6월항쟁 이후 제정된 새로운 헌법에 따라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되고 헌법재판소가 설립되어 국민 기본권 향상에 기여해왔다. 또 대법원과 하급법원들이 권위주의 정부 아래에서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온 결과, 법조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과거에 비해 상당히 향상된 것이 사실이다. 국민적 논란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쟁점에 대해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가 판결을 내리면 그것을 우리 사회의 최종적인 판단으로 받아들이는 경향도 어느 정도는 자리가 잡힌 것 같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렇지만 우리 민주주의와 법조인의 역할은 여전히 도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가 행한 댓글 공작은 민주적 선거 원칙에 대한 직접적 훼손이었다. 또 그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와 재판을 보장하는 대신 수사검사들에 대해 노골적 외압이 가해지는 것을 보노라면 헌법적 국가질서가 절대권력 앞에 모독당하는 것을 목격하는 듯하다. 민주주의의 한 축이 흠결 없는 선거를 통해 국민의 대표를 선정하도록 보장하는 것이고, 다른 한 축은 법원과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헌법이 부여한 소명에 따라 정의를 실현하도록 하는 것이니 이 양면에 모두 균열이 생기고 있는 셈이다.

생각건대 오늘날 법원과 검찰이 우리 사회에서 담당하는 정치적 역할이 너무 과도한 것이 일차적으로 문제다. 철도 민영화를 반대하는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해 검찰과 경찰이 나서 민주노총을 침탈하고 철도노조 간부를 구속하고 있다. 노사 문제에 대해 정부가 대신 나서서 형사상의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잘못된 관행이 부활하고 있다. 또 이석기 의원 등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인사들에 대해서는 혁명조직(RO)이라는 이름하에 내란음모죄와 찬양고무죄를 내세워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사법공화국이다. 국민의 자유와 자율은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

반면 성역을 인정하지 않고 당당하게 수사하고 처벌하여 법적 정의를 수호하는 법원과 검찰의 민주적 역할은 갈수록 약해지는 것이 또다른 문제다. 나는 판검사들 가운데 순수하고 용기있고 제대로 된 의식을 가진 분이 참으로 많다고 믿고 있다. 그분들이 우리 민주주의가 자신에게 부여한 역할을 당당하게 수행해주기를 기대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판사와 검사는 정치권력에 대한 봉사자로서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역할을 통하여 존경을 받아야 한다.

대한민국 법조인의 힘은 여전히 강하다. 사실 너무 강하다. 우리 헌법 아래에서 입법부와 행정부의 민주적 정당성은 선거와 표에 근거하고 있다고 한다면, 사법부의 권위는 헌법이 부여한 역할에 따라 정의를 세우는 기능을 다하는 데서 나온다. 판사, 검사, 변호사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역할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우라는 법언을 되새겨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의 미래를 고뇌하고 국민들을 진정 위로하며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잘나가는 세무변호사가 인권변호사로 나서게 된 <변호인>의 이야기는 먼 과거의 일화가 아니다. 법조인 모두가 다시 한번 정의를 위해 나서야 할 때다.

백태웅 미국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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