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택 논설위원
요즘 동영상 한 편이 유튜브에서 뜨고 있다. 지난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이명박근혜’ 감독, 원세훈·남재준 주연의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26분 분량으로 정리한 다큐멘터리다. ‘독재 1.9’는 게시 8일 만에 벌써 28만여명이 다녀갔고 1700여건의 댓글이 달렸으니 대박 조짐이 보인다. <변호인>과 함께 꼭 보아야 할 영상이라고 추천한 댓글도 있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 때 야당과 여당 성향 이용자의 트위터 여론 비율이 70:30이었으나 2012년에는 45:55로 역전됐다가 대선 뒤에 다시 원상회복됐다”는 전문가 분석은 국정원 사건의 성격을 압축적으로 말해준다. 특정 시간에 맞춰 무한 반복되는 국정원 제작 추정 ‘봇’ 프로그램이 최근까지도 ‘무상복지 시리즈는 포퓰리즘’이라며 새벽 2시55분이면 어김없이 같은 글을 반복 트위트하고 있다는 대목은 다큐보다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현실에선 ‘드라마 국정원’이 종영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국회가 우여곡절 끝에 통과시킨 개정 국정원법을 두고 50여년 만의 대대적 개편이라는 등 의미부여가 적잖다. 언뜻 보기에 예산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정치활동 관여 지시에 대한 이의제기권을 신설하는 등 나름 개선된 것처럼 보이는 대목도 들어 있다. 정치관여죄 등의 형량과 시효가 늘어나 위축효과도 기대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어떤 멍청한 간부가 이의 제기할 요원에게 그런 일을 시키겠으며, 언제는 형량이 적어서 정치에 개입했던가. 예산 통제권을 갖는다지만 공작금 영수증까지 들여다보는 것도 아니고 이 또한 겉치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대국민 심리전’ 활동은 합법적으로 보장받게 됐다. ‘정치 관여’만 아니면 되니 ‘종북몰이’에는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국정원 용어로는 ‘대북심리전’이 곧 ‘종북 척결’ 활동이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1일 새벽 국회 법사위에서까지 “일부 일탈은 있었지만 조직적 선거개입은 아니”라고 목청을 높인 것도 심리전 활동을 계속하겠다는 뜻이다.
요원의 기관 출입 문제도 마찬가지다. ‘법률’과 ‘국정원 내부규정’에 위반하는 파견 및 상시출입을 금한다는 정도로는 지금과 크게 달라지길 기대하기 힘들다.
국정원 개혁이 빈껍데기로 전락한 일차적 책임은 물론 청와대와 새누리당에 있다. ‘말이 안통하네뜨’ 대통령의 윤허 없이는 한 발짝도 더 나가지 못하는 여당에 제대로 된 개혁을 기대하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의 책임은 가볍지 않다. ‘예산 국회’라는 호기를 살리지 못한 데는 1년이나 그 난리를 쳤는데 ‘설마’ 또 그러겠느냐는 생각이 작용했을 것이다. ‘만약’ 협상이 결렬되면 그 책임을 뒤집어쓸지 모른다는 걱정도 했을 것이고, 안철수당을 의식해 주판알도 튕겨봤을 것이다. 그러나 ‘설마’한 탓이든, ‘만약’을 걱정한 때문이든, 1년 가까이 촛불 들고 거리에 나섰던 시민들에게는 초라한 성과요, 어찌 보면 여야 합작의 ‘사기’에 가깝다. 협상의 지렛대조차 없으니 2월 국회에도 기대할 게 없다.
정당은 유권자 지지가 있어야 존립하고, 이는 지지층의 기대와 이익을 지킴으로써 실현된다. 신성한 한 표조차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는 야당은 존재 의미를 찾기 어렵다. 사실상 표를 도둑질한 정보기관이 수백만, 수천만건의 물증 앞에서 여전히 궤변을 늘어놓는데 구멍 숭숭 뚫린 법을 만든 것으로 할 일 다 했다는 식의 야당이라면 지지층으로부터도 환영받기 힘들다.
야당이 방조한 어설픈 개혁에 대한 평가는 이제 유권자의 몫으로 넘어갔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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