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무 스포츠부 선임기자
지난 연말 2014 브라질월드컵 관련 언론사 공동 인터뷰 때다. 바로 옆에 앉아 있던 홍명보(45) 감독한테 넌지시 이런 질문을 던졌다. “1차전 상대인 러시아 감독(파비오 카펠로)은 유럽 명문 클럽을 두루 지도한 명장이고 지략가이다. 이에 반해 홍명보 감독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러자 홍 감독은 “축구는 선수가 하는 것이지 감독이 하는 것은 아니다. 승패는 선수에 의해 결판 난다”고 웃으며 넘어갔다. “가장 고민되는 포지션은 어디냐”고 묻자 “양 풀백도 그렇고, 원톱도 그렇고…”라고 답했다.
홍 감독은 이날 “조별 예선에서 살아남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 이후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며 월드컵 목표에 대해 다시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하지만 새해 벽두 다수 언론들은 “16강을 넘어 8강 진출이 홍명보호의 목표”라고 화두를 던졌다.
유럽 빅리그를 호령하는 특급 스타가 없는 러시아를 잡고 첫 단추를 잘 끼우면 2승1무 또는 2승1패도 가능하다고 조심스레 전망해본다. 물론 알제리나 벨기에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그러나 지난해 러시아·스위스와의 평가전에서 보여준 대표팀의 폭발적인 공격력과 기동력을 보면 달성 가능하다고 본다.
2010 남아공월드컵 때 한국이 과연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이뤄낼 수 있을지에 대해 축구 기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었다. 한국이 리오넬 메시(FC바르셀로나)가 포진한 아르헨티나, 아프리카 전통의 강호 나이지리아, 유로 2004 챔피언 그리스와 함께 B조에 편성돼 16강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주류였던 것 같다. 나이지리아·그리스와는 붙어볼 만하기 때문에 16강이 가능하다는 이도 있었는데 후자 편에 섰던 기억이 난다.
결국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1승1무1패 조 2위로 16강 진출 꿈을 달성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 때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한국이 1승1무1패를 기록하고도 프랑스(1승2무)한테 밀려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허 감독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2승1패를 기록하고도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경험이 있다.
남아공월드컵 본선 무대를 경험한 선수 중 지난해 홍명보호의 평가전에 계속 차출된 선수는 이청용(볼턴), 기성용(선덜랜드), 김보경(카디프시티), 정성룡(수원 삼성) 4명뿐이다. 이청용과 기성용은 훨씬 성숙해졌고 잉글랜드 무대에서 단련되고 있다. 국내파 이근호(상주 상무)와 김신욱(울산 현대)도 더 위협적인 공격수로 거듭났다. 여기에 ‘손세이셔널’ 손흥민(레버쿠젠)까지 가세했다. 골 결정력 약점만 보완하면 공격력은 세계적 강호들과 맞붙어도 나무랄 데 없다는 사실이 지난해 평가전에서 증명됐다. 평가전에서 만난 외국 감독들은 한결같이 “한국 선수들은 빠르다”고 칭찬했다.
문제는 수비력이다. 월드컵 본선에서 세계적 공격수를 막아내기엔 여전히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홍 감독이 유럽파보다 신임하는 좌우 풀백 김진수(니가타)와 이용(울산 현대)은 큰 무대에 선 경험이 없는 게 가장 약점이다. 월드컵 본선에서는 날고 긴다는 측면 공격수들이 즐비하다. 양 측면이 뚫리면 끝장이다. 남아공에서 허정무호가 선전할 수 있었던 것도 이영표-차두리라는 노련한 좌우 풀백이 버팀목이 돼줬기 때문이다. 홍 감독은 주전 80%는 완성됐다고 했다. 아직 부족한 20%는 수비 라인일 것이다. 그래서 남은 6개월 동안 수비 조직력 극대화가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조별리그 2승1무는 결코 못 이룰 꿈이 아닌 것 같다. 이청용도 한 언론사 신년 인터뷰에서 “3승으로 16강 가는 게 목표”라고 하지 않았는가?
김경무 스포츠부 선임기자 kkm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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