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민영화 저지, 노동탄압 분쇄, 철도파업 승리 1차 총파업 결의대회’에 참여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 양대 노총의 조합원과 시민들이 “민영화를 막아내자”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첫번째 새해를 맞는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에 수많은 사람들이 ‘안녕하지 못합니다!’를 외치면서 2013년 한 해가 저물었다. 지난 12월18일과 19일에는 재야 인사들과 종교인들,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이 선거부정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국선언과 시위에 나섰다.
12월28일 오후에는 보신각 앞에서 150여명의 변호사들이 지난 대선의 선거부정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시청광장까지 거리행진을 했다. 여기에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함께 행진하며 구호를 외쳤다. 시청광장에서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연대집회에 수만의 사람들이 운집해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경찰의 민주노총 사무실 난입을 성토하고, 민주주의 수호를 결의하고, 대통령의 불통을 비난했다.
이것은 국내만의 일은 아니다. 요즈음 한국인이라면 미국이든 유럽이든 그 어느 곳에서든 자기가 있는 곳에서 지난 대선의 선거부정을 규탄하고 쓰린 가슴으로 서로 안부를 묻는다. 외신들도 한국의 부정선거를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다는 전갈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 정부는 그게 뭐 대수냐는 생뚱맞은 표정인데다 방송과 보수신문들은 조용하기 그지없다. 대한민국 정부와 언론을 보노라면 부끄럽고 창피하다.
선거는 주권자인 국민이 대표자를 선출해 국정을 맡기는 대의정치 제도의 근본을 이룬다. 선거가 부정으로 얼룩지면 그 선거로 권좌에 오른 대표자가 정당성을 가질 수 없음은 당연하다. 정당성을 잃은 자가 행사하는 권력은 국가권력의 외관을 지녔을지라도 벌거벗은 폭력일 뿐이다. 그런 연유로 우리는 역사에서 이승만·박정희와 전두환 일파를 민주주의를 유린한 독재자들로 단죄하는 것이다. 아무리 미사여구로 자기들의 행위를 치장해 본들 그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일 뿐 역사의 단죄를 피해갈 방법은 없다.
주권자인 국민은 본래 가지고 있는 권한의 일부를 선거를 통해 대표자에게 위임하여 공직을 부여한다. 그러나 그 위임은 언제라도 철회할 수 있는 권한을 유보한 위임일 뿐이다. 국민은 여전히 주권자로서의 지위에서 공직자를 감시감독할 권한이 있고, 위임의 본뜻에 따르지 않는 공직자에 대한 위임을 철회할 수 있다. 이것이 국민주권의 본뜻이며, 국민주권으로부터 연유하는 국민 저항권과 소환권의 근거를 이룬다.
그런데 지난 대선 직전부터 제기되었던 국가권력의 선거개입 의혹이 그동안 차츰 베일을 벗고, 국정원, 행정안전부(현 안전행정부), 국방부, 보훈처 등 다수의 국가기관이 상상할 수조차 없는 부정행위를 전방위적으로 저질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아직도 더 많은 부정이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지난 대선이 3·15 부정선거 이래 최대의 관권개입 부정선거였던 사실은 이미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그럼에도 그 선거를 통해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은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고, 이익을 받은 바도 없다’는 말로 진상규명을 피해가려 한다. 국정의 최고책임자답지 못한 치졸한 변명이다.
그뿐 아니라 검찰의 부정선거 수사를 방해하고 수사팀장을 축출하는 일마저 서슴지 않았다. 한걸음 더 나아가 부정선거로 인한 정권의 위기를 덮으려는 수단인지 33년 만의 내란음모 사건으로 진보정당을 옥죄고, 정당해산 심판 청구까지 제기하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 전교조의 노조 지위를 박탈하려는 시도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의 말처럼 자신과는 아무 관계도 없고 이익을 받은 바도 없다면 왜 이명박 정권이 저지른 부정선거의 실상이 드러나는 것을 저렇게도 두려워하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공공연히 유신과 같은 권위주의 시대로 다시 돌아가려는 것인가.
대통령의 생각이 어떠하든 국민은 그가 지난 대선의 선거부정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의 말처럼 그와 직접 관계가 없는지 여부를 떠나서, 그가 이익을 받은 바 없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그가 부정선거였던 지난 대선을 통해 당선되었고 현재 국정의 최고책임자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에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요구인 것이다. 국가의 근본 기틀을 뒤흔드는 국가기관의 선거부정에 대해 대통령이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일을 하지 않겠다면 다른 어느 누가 이것을 대신 할 것인가? 만일 이러한 부정을 없다는 듯 덮고 넘어간다면 우리나라의 장래는, 우리 국민들의 미래는, 우리가 그토록 애쓰면서 피와 땀으로 쟁취한 민주주의는, 이 모든 것은 어떻게 될 것인가?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취임 당시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에 노력하겠다’고 선서하였으니, 여기에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부정선거는 헌법을 유린하고 국가를 위태롭게 하며 국민의 자유와 복리를 위협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국민은 당연히 지난 대선의 선거부정에 대하여 대통령이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1948년의 정부 수립 이후 우리는 국가권력이 저지른 너무나도 많은 학살과 조작, 고문과 억압, 부정과 부패, 월권과 불의를 보아왔다. 그리고 그 모든 의롭지 못한 행태의 근본에는 국민의 의사가 아닌 부정선거로 찬탈한 권력, 총칼로 강탈한 권력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이러한 권력의 횡포에 제대로 책임을 묻지 못했다.
이것은 일제 36년의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후과일 뿐이다. 정부 수립 직후 출범한 반민특위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이승만 정권의 친일경찰에게 무참히 유린되었고, 그 결과 36년의 참혹한 식민지배 기간 중 일본에 부역한 자들을 단 한명도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다.
프랑스와 벨기에,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이 독일에 점령되었다가 4년여 뒤에 국권을 회복한 후 나치에 부역한 자들을 수만명씩 처단한 사례들을 보면, 우리의 경우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기이하고 황당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그 이후 지금껏 그 불의한 권력은 대를 이어 계승되어 왔고, 그런 까닭에 권력이 자행한 불법과 불의 역시 제대로 청산된 일이 없다. 이것이 선거부정을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대선에 불복하느냐’고 호통치면서, 지난 대선의 선거부정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호도하려는 청와대와 정부여당이 믿는 구석이다. 이번 사태 역시 끝까지 버티면 그냥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지금은 분노하고 있지만 조만간 옛날과 달라진 것이 없다면서 체념하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들이 믿는 것처럼 정말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라도 우리 국민은 이와 같은 과거청산의 부재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난 대선에서 저질러진 부정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책임자를 엄정하게 처벌해야 한다. 임기를 마친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예외가 아니다. 철저하게 수사하여 책임이 있다면 마땅히 처벌해야 한다. 선거 부정행위의 공범이 기소되어 있으니 공소시효도 정지되었고, 책임이 있다면 처벌에 장애가 없다. 국민이 이것을 요구하고 있다. 오늘의 이 사태는 이명박 정권 초기에 있었던 미국 쇠고기 수입 고시로 촉발된 촛불시위와는 근본부터 다르다. 주권이 모욕당한 지난 대선, 선거권의 신성함이 오욕된 부정선거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하늘의 그물은 넓어 성긴 것처럼 보여도 빠뜨림이 없다(天網恢恢 疎而不失·천망회회 소이불실) 하지 않는가. 만일 이 정권이 국민의 분노와 실망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선거부정을 덮고 넘어가려 한다면, 또한 국민의 열망을 읽지 못하고 반민주적 행태를 지속한다면, 국민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그 대가를 치르도록 요구할 것이다.
권력의 즉각적인 와해를 가져오지는 않을지라도 국민의 불신과 권력의 누수로 인하여 심대한 정치적 무능에 빠져드는 결과로 귀결될 것이다. 그리고 후일 우리의 역사는 이 시기를 나쁜 대통령의 시대로 기록할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 4년 넘게 남은 임기를 생각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마땅하다. 그리고 지난 대통령선거 부정의 진상규명을 피해가서는 안 될 일이다. 그것만이 이 정권의 위기를 타개하고 내외에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보여주는 길이다.
최병모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주의수호 비상특별위원장 최병모
최병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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