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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사법부가 문제다 / 김종철

등록 2013-12-25 19:15수정 2013-12-25 20:28

김종철 정치부 기자
김종철 정치부 기자
민주노총 본부의 사무실 문을 부수고 들어간 경찰이 내민 것은 체포영장이었다. 5500명의 경찰을 동원해 지난 22일 민주노총이 입주해 있는 경향신문사 건물을 에워싼 뒤 강제로 건물에 진입한 법적인 근거다.

경찰이 수색영장을 받지 못한 채 체포영장만 들고 주인이 거부한 사적인 공간을 강제로 쳐들어간 것은 형사소송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많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법원이 철도노조 간부에 대한 체포영장을 손쉽게 내줬다는 점이다. 업무방해죄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발부되는 체포영장은 노동자 파업을 파괴하는 초강력 흉기이기 때문이다.

파업이 발생하면 사용자는 업무방해 혐의로 노조 간부를 검찰이나 경찰에 고소 또는 고발한다. 이후 수순은 뻔하다. 노조 간부는 당연히 소환을 거부하고, 서너 차례 이런 형식적인 절차가 끝나면 체포영장이 나간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도망갈 데가 어디 있겠는가. 조계사가 있어 다행이나 경찰이 불법적인 수단도 마다하지 않으니 노조 지도부가 검거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붙잡힌 사람은 같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법원은 대부분 영장을 내준다. 이번에도 체포된 2명의 철도노조 간부가 모두 구속됐다. 지도부가 구속되면 파업은 사실상 노동자의 패배로 끝난다. 노동자의 쟁의권이 헌법과 노동관련법에 보장돼 있지만, 현실에서는 공권력의 개입으로 실효성이 없다. 업무방해죄를 적용한 체포영장이야말로 노동3권을 무력화하는 괴물이다.

그런 면에서 정부의 노동탄압에 대한 상당한 책임은 법원에 있다. 체포영장을 기각했을 경우를 가정해보면 법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파업에 업무방해죄 혐의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사용자의 업무를 방해함으로써 노동자의 요구를 관철하려는 게 파업인데,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게 말이 되는가. 우리 법원도 이런 것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점을 잘 안다. “파업이 언제나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파업이 이뤄져 사업 운영에 손해가 초래됐을 경우에만 업무방해죄가 성립된다”며 업무방해죄를 엄격하게 적용하라는 대법원 판례가 2년 전에 나왔다. 그런데도 전국의 법원은 철도노조 간부 28명에 대해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이 있고”라며 체포영장을 내줬다. 2년 전만큼의 고민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구나 이번 철도파업은 철저하게 ‘합법’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두 차례 조합원 총회로 파업을 결의한 뒤 쟁의조정 기간을 거쳤다. 철도 운영에 필요한 필수요원들을 파업에서 제외했으며, 수서발 케이티엑스(KTX) 자회사 설립 반대(정책)뿐 아니라 임금인상 협상 결렬(근로조건)도 파업 이유로 삼았다. 이보다 더 합법적일 수가 없다. 법 위반이 없는데도 체포영장을 습관처럼 경찰 손에 쥐여준 것은 법원의 권한 남용이자 ‘일탈’이다.

사법부가 노동자들에게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물리고 있는 것도 악랄한 노동탄압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90억원(12월19일)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것을 비롯해 쌍용차 노조 46억원(11월29일), 현대자동차 노조 20억원(10월10일), 코레일 노조 69억원(2011년 3월) 등의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배상금 때문에 개인 재산과 급여까지 차압당한 노동자들이 최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 데서 보듯 이런 고약한 판결은 기댈 데 없는 노동자를 죽음으로 모는 일이다. 코레일도 이번 파업과 관련해 이미 77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의 현재 분위기라면 파업 이후 철도노조원들은 또다시 거액의 빚 폭탄을 맞게 된다. 노동자들을 벼랑으로 떠미는, 악어의 눈물도 없는 판사들이 무섭다.

김종철 정치부 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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