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지 어제로 꼭 1년이다. 박 대통령은 국내 정치에서 나름의 지지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대외 정책과 한반도 문제에서는 입지가 날로 위축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얼마 전 박 대통령과 만나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좋은 베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세력 대결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한국에 줄을 똑바로 서라고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모양이 연출된 것이다.
민주화 이후 어느 정부도 한-미 관계에서 이런 취급을 당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한-중, 한-일 등 다른 외교관계가 좋은 것도 아니다. 인권외교를 추구하는 카터 미 행정부와 갈등을 빚으면서 한-미 관계가 최악이 되었던 박정희 정권 말기가 연상될 정도다. 바이든 사건은 ‘박근혜 외교’의 고립 가능성을 시사하는 단적인 풍경이다.
바이든 사건에는 심각한 배경이 있다. 미국과 중국이 동북아 질서를 새로 짜려 다투면서 한국에 선택을 강요하는 측면이 있는 까닭이다. 100년 전 열강의 각축 속에서 출로를 고민하던 대한제국 말기와 비슷하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한-미-일 동맹’ 편에 확실하게 가담하자거나 경제를 고려할 때 한-중 관계가 우선이라거나 하는 단순 논리가 아니라, 좀 더 진지하고 종합적인 전략 고민이 필요한 때다.
문제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주변 관계조차 풀지 못함에 따라 대외 정책의 발언권이 더욱 오그라들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남북관계를 풀지 못하면 북핵 문제를 비롯한 안보 외교에서 우리는 주변국한테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북한과 대화가 된다는 점은 남한이 미·중·일·러를 상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엊그제 “북한은 현재 김정은의 권력 강화를 위해 대대적인 숙청을 감행하면서 공포정치를 하고 있다”며 북한을 강하게 비판했다. 장성택 처형을 통해 북한 권력의 전근대성, 야만성이 재확인된 건 맞다. 언론이나 학자들이 얼마든지 그렇게 분석하고 진단할 수 있다. 하지만 남쪽 정부의 최고 책임자가 공개적으로 ‘공포정치’를 언급하는 것은 썩 좋은 일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긴 안목의 협상과 외교 원칙에 어긋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언제가 되든 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수 있는, 따라서 대화로 관리해야 할 상대다. 이런 모습을 보면 박 대통령이 대외 관계의 합리성보다는 남쪽 사회의 보수여론을 여전히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한-일 관계도 문제다. 박 대통령은 당선 1년이 되도록 한-일 정상회담을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 아베 신조 정권의 역사 인식과 공격적인 대외 정책이 문제인 것은 사실이지만 언제까지 “아베가 나쁘다”라고 하면서 거리 두기만 할 건가. 문제가 있더라도 정상끼리 만나서 직접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그것이 외교다. 더욱이 한·일 정상은 과거 정부 시절에 셔틀외교라고 해서 명분과 형식을 따지지 않고 수시로 내왕하던 사이 아니었나.
바이든의 압박은 박 대통령이 자초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북쪽에 친구가 없고 일본, 중국 어느 쪽에도 친구가 없으니 얕잡아 보인 것 아닌가 싶어서다.
‘박근혜 외교’의 문제점은 대체로 전략과 정책이 약하다는 것이다. 협상과 외교로 판을 만들어나가도 부족한 일을, 군사주의와 보수 여론 우선의 관점에서 접근하니 더욱 가닥을 잡지 못하는 것 아닌가 싶다. 박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나진~하산 철도 연결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이 참여하도록 합의한 것은, 그나마 기대를 걸 만하다.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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