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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죽음을 애도하지 않는 사회 /김중미

등록 2013-12-18 19:11수정 2013-12-18 20:48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사람의 목숨이 존중되지 않는 사회처럼 절망적인 사회는 없다. 집권 2년차를 맞은 북한의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자신의 권력을 굳히기 위해 장성택을 숙청하고 잔인하게 처형했다. 우리 정부와 여당은 북한의 독재정권을 향해 연일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낸다. 총리와 국방부 장관은 “장성택 공개처형은 반인륜적 행위로 북한 체제의 불안정한 상황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일시적으로는 북한 내부가 강화될 수 있겠지만 좀더 시간이 지나면 민심이 이반되고, 정권 불신이 커지기 때문에 내부 불안이 가중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거리낌없이 말한다. 대통령까지 나서 “특히 북한이 우리 내부 분열을 꾀하고 혼란을 야기할 우려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파악해야…” 한다며 국민들에게 은근히 으름장을 놓는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사람의 목숨을 존중하는 사회인가? 5년 전에는 살기 위해 건물 옥상에 올라갔던 철거민 다섯명과 경찰 한명이 죽었고, 지난 4년간 쌍용자동차에서는 23명의 해고노동자가 사망했다. 칠팔십 노인들이 몸에 쇠사슬을 감고 울부짖던 밀양에서는 두 분의 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삼성전자에서는 그동안 직업병으로 56명이 사망했다. 장애등급제 때문에 장애인과 부양자가 자살을 하고 불과 두 달 전에는 삼성전자서비스의 최종범씨가 돌배기 아기를 둔 채 자살했다. 어떻게 일일이 그 억울한 죽음들을 열거할 수 있을까?

그런데 정부는 그들의 죽음에 어떤 애도도 하지 않는다. 그들이 왜 제 몸을 불살랐는지, 왜 허공에 몸을 던지고 제 목에 줄을 매야 했는지 알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유족들이 한이 맺혀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든 말든 상관이 없다.

열흘 전 송전탑 공사를 중단하라며 농약을 마신 유한숙씨가 끝내 돌아가셨다. 한전과 정부는 유한숙씨의 죽음을 개인적인 문제로 몰아가더니 이제는 시민분향소 설치마저 막고 있다. 이 또한 반인륜적인 일이다.

열흘 전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한 참석자가 대통령에게 얼마나 생각이 많으시냐고 묻자 대답했다고 한다. “국민 일자리 창출이라든가 경제 활성화라든가 그런 부분을 통해 국민을 어떻게 하면 모두가 잘살게 하느냐는 생각 외에는 다 번뇌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많은 생각을 안 한다.” 삶의 자리를 빼앗겨 죽어가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데 다 번뇌라니.

철도 파업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보면 철도 노동자와 국민들과 전면전을 치르려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신념이 저들을 저렇게 타협을 모르는 냉혈한 집단으로 만들었을까? 자신의 권력을 지키려는 정치세력과 그들이 대변하고 있는 자본의 탐욕 때문이다.

나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국민을 적으로 여기고 대결을 하는 정부와 대통령이 두렵다. 국가의 정책 때문에 사람이 죽었는데 정부와 대통령은 애도의 말 한마디도 없으니 무섭다. 저들의 심장이 뛰고는 있는지, 저들의 심장에도 피가 도는지 궁금하다. 오죽하면 촌로들이 분신을 하고 음독을 할지 한번쯤은 돌아보는 게 인간의 도리다. 이러다 대한민국의 “민심이 이반되고, 정권 불신이 커지기 때문에 내부 불안이 가중될” 현실이 다가올까 두렵다.

권력을 잃고도 정신을 못 차리는 야당 역시 국민의 편이 아니다. 제주해군기지, 밀양 송전탑이 그들의 정권 아래 시작되었다. 민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원죄 때문인가? 민주당 역시 수많은 이들의 죽음에 애도하지 않는다. 여당과 야당에 양비론을 들이대는 안철수 의원 쪽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언제까지 사람의 목숨이 일자리보다 못한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만 할까? 우리는 어찌하여 이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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