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문화부장
제목부터 이런 품위 없는 비어를 쓰게 돼 심히 유감이다. 이걸 ‘오버질’ 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하겠다.
결국 주간과 편집자문위원들의 사퇴로 일단락된 월간 <현대문학> 얘기다. 원로작가 이제하 선생이 자신의 새 소설 연재가 거부당했으며 그 이유가 ‘박정희 유신’과 ‘87년 6월항쟁’이란 단어가 들어간 탓이라고 주장하는 페이스북 글이 지난주 알려진 게 계기였다. <현대문학> 쪽이 달랑 이 두 단어 때문에 연재를 취소했다는 직접 증언이나 말은 없었다. 설마 그 이유만일까라는 생각부터 드는 게 보통사람들의 상식적 반응일 것이다. 나 또한 그랬으니. 하지만 이후 드러난 여러 사례들은 ‘설마’를 흔들어 놓았다.
작가 스스로 좌도 우도 아닌 아나키스트라고 얘기했지만, 이제하 작가의 작품에서 흔히 말하는 정치적 색채를 찾기란 쉽지 않다. 정찬, 서정인 등 최근 <현대문학>에 게재가 거부되거나 중단된 다른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10여년 전 이제하 작가가 소설집 <독충>에서 운동권을 묘사한 데 대해 <한겨레> 최재봉 기자는 ‘이제하 선생님께’라는 칼럼으로 그 냉소와 적의를 조목조목 비판한 적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이들의 글까지 차단된 것이 사태의 황당함을 더 극명하게 드러냈다.
처음엔 한 민간잡지의 편집에 대해 문단은 물론 야당까지 비판에 나서는 게 좀 ‘과잉’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문인이나 문학 독자가 아니라면 우리나라 최장 문예월간지라는 <현대문학>의 무게를 잘 모른다. 문예지가 장안의 화제가 되던 시대도 아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인 박근혜 대통령의 수필과 이를 ‘찬양’하다시피 한 평론이 실린 9월호를 보고도 나는 분노보다 피식 헛웃음부터 나왔더랬다.
마음에 걸리는 건 있었다. 일부에선 <현대문학>이 80년대 자금난으로 경영권이 넘어간 줄 알지만, 애초 1955년 창간 때부터 스폰서는 대한교과서였다. 대한교과서는 요즘 학생들에겐 미래엔이라는 이름으로 친숙한 교과서, 참고서 시장의 강자다. 아이세움, 와이즈베리, 북폴리오, 휴이넘 같은 출판사뿐 아니라 에너지·도시가스 사업까지 거느리고 있다.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에 따르면 미래엔은 2012년 매출액 1321억여원으로 전체 출판사 중 10위이며, 10위권 업체 중 전년 대비 가장 큰 폭의 매출상승을 기록했다. 그제 사퇴한 <현대문학>의 양숙진 대표 겸 주간은 이 회사 설립자의 며느리이자 현 김영진 대표의 어머니다. 양 주간을 아는 이들은 그가 문학적 ‘관심’과 소양이 깊고, 보수적이긴 하나 그리 ‘단순무식’한 사람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러다보니 이제하 작가가 한 인터넷라디오 방송에서 “이건 뭔가 뒤에서 차단을 시키라는 지시 비슷한 게 있지 않았나”라고 제기한 것 같은 의문들이 꼬리를 물게 됐다. 역사교과서 검정 논란에서 보듯 교과서 출판사에 정부는 ‘갑’이다.
물론 <현대문학>은 “정치로부터 문학을 보호하고자” 하다가 오해를 불렀고 “지금까지 어떤 정치 세력의 특혜를 받은 적도 없으며 또 기대조차 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나 또한 아무리 현 대통령이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문화에 관심이 많다기로서니 정부가 일개 문예잡지의 편집까지 간섭할 리는 없다고 믿는다. 체포와 검열로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철저히 짓밟던 70년대와 지금은 다르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메가박스의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 중단 등 올해 민간문화영역에서 나타난 일련의 움직임은 석연치 않다. 아니 그 실체가 분명치 않기에 더 두렵다. 누가 ‘오버질’을 부르는가. 하지만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오버질’이 거듭될수록 상식적인 사람들은 점점 더 등을 돌린다는 것이다. <현대문학> 사태처럼.
김영희 문화부장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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