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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억지로 막으면 터진다 / 김동춘

등록 2013-12-16 19:05수정 2013-12-17 18:27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박근혜 정권이 낭패다. 지난 대선 부정을 감추기 위해 그 주역인 국정원을 동원해서 거의 모든 수단과 카드를 사용했으나, 급기야 성직자들이 대통령 퇴진하라는 요구까지 들고나왔다. 그리고 청와대의 누군가가 국정원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채동욱을 찍어냈다는 증거들이 또다시 나오고 있다. ‘종북’몰이와 같은 공갈이나 으름장도 자꾸 써먹으면 약발이 떨어진다. ‘개인 일탈’이라는 속이 훤히 보이는 둘러대기를 믿을 사람 없다. 공무원 65% 이상이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했다고 판단하고 있는데 이런 공무원들이 앞으로 대통령의 영을 따를까? 이제 대선 1년이다. 대통령의 핵심 정책 의제가 제출되고 실천되었어야 할 시간이 거의 다 지나간다.

이 정권이 정말 낭패다. 지금보다 언로를 더 틀어막고, 성직자들과 촛불 시민, 파업 노동자들의 항의를 때려잡자고 나라를 계엄 상태로 만들 작정인가?

민주당이 낭패다. 127명의 국회의원이 장하나 의원 한 사람의 몫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 정당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다시 묻게 된다. 국정원 대선 개입을 힘있게 공격하지도 못하고, 박근혜 정권의 계속된 공약 포기를 비판하면서 국가 개혁의 큰 그림을 제시하지도 못한다. ‘대선 불복’ 으름장에 위축되어 계속 청와대에 끌려다니면서 1년을 보냈다. 이런 야당에게 내년 지방선거나 2017년 대선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진짜 낭패인 것은 국민들이다. 박 대통령이 선거 때 들고나온 창조경제도, 경제민주화도, 맞춤형 복지도 다 당선을 위한 급조된 공약임이 거의 드러났고 철도와 병원도 모두 민영화하려는 마당에 장차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할지 막막한 상태다. 대통령 사퇴를 주장하기는 겁나고, 사퇴해도 길도 잘 보이지 않으니 정말 낭패다.

북한 김정은 세력도 낭패다. 장성택을 ‘반역자’로 몰아 처형해서 권력을 안정시켰다고 좋아할지 모르지만, 그게 1950년대 그의 할아버지가 남로당 연안파를 제거했던 아주 낡고 촌스러운 권력 강화 방법이라는 것을 북한 사람들은 모를까? 얼마나 불안하고 자신이 없으면 저런 식으로 고모부를 전격 처형해야 했을까?

그래서 남북한 모두가 낭패다.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입인 기자들과 대화 한번 한 적이 없다. 자신이 없는가, 필요를 못 느끼는가? 파업 한번 참가했다고 노동자 직위해제하는 비상식적 강경노선이 나온다. 청와대와 국정원이 정치를 다 하다 보니 정작 다급한 국내외 정치·경제 문제는 제대로 거론되지도 못하고 있다. 정치가 실종되니 신부들이 ‘정치’에 나섰다. 역사는 이런 상황은 나라가 망할 징조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때 외적이라도 침입하면 금방 무너진다. 국민들이 지배자들을 신뢰하지 않고 오직 두려워서 입을 다문 나라, 그런 나라는 위기가 닥치면 권력자는 도망가고 군인들은 적에게 투항하고, 의인은 사라지고, 현인은 능력을 감춘다.

그래도 ‘사회’는 아직 숨쉬고 있다. 기성 언론이 말을 막는 역할을 하니 대자보가 다시 등장했다. 청년들이 움직이니 실낱같은 희망이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60년 4·19, 87년 민주화 시절은 아니다. 국회 막내 장하나 의원과 대학생의 대자보에 환호하는 우리 어른들은 비겁하다. 종교·시민사회단체, 사회 원로들이 모두 나서서 이 ‘낭패’의 수습책을 제시해야 한다. 엠비(MB)정권하의 모든 비리, 대선 불법 개입, 그리고 대선 부정 수사 방해 의혹에 대한 대통령의 소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권이 이렇게 계속 버티면서 막기만 하면 걷잡을 수 없이 터질지도 모른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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