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19일 밤 당선이 확실시된 뒤 새누리당 당사로 들어서던 박근혜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닷새 뒤면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지 1년이 되는 날입니다. 박근혜 후보 당선이 확정된 그날 밤 전국의 거리에는 환호와 탄식이 교차했습니다. 지지자들은 밤새 “박근혜! 대통령!”을 외쳤으며, 반대자들은 ‘멘붕’에 빠졌습니다.
이때 국민의 마음을 헤아린 사람은 박근혜 당선인이었습니다. 그는 당선 인사에서 “저에 대한 찬반을 떠나 국민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나가겠습니다” “이제 상생과 공생의 정신이 정치, 경제, 사회 곳곳에 스며들도록 제가 앞장서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선대위 해단식에서는 “앞으로 야당을 소중한 파트너로 생각해서 국정운영을 해 나가겠다는 약속”도 했습니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100% 대한민국”을 외쳤던 그다워 보였습니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길 바라는 축원이 반대 진영에서도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박 대통령의 입에서는 반대자 포용, 소외 국민에 대한 배려, 상생과 공존 등의 단어가 사라졌습니다. 대신 국민을 겁주거나 상대를 협박하는 말들이 많아졌습니다. 지난 9월 처음으로 야당 대표와 만난 뒤에는 “야당에서 장외투쟁을 고집하면서 민생을 외면한다면 국민적인 저항에 부딪힐 것입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데 대해 지난달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일부 신부들이 정권 퇴진을 외쳤을 때는 “국민의 신뢰를 저하시키고 분열을 야기하는 일들은 용납하거나 묵과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말만 거친 게 아닙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이후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더 험악합니다. 10여년간 합법적인 지위를 갖고 있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느닷없이 법 테두리 밖으로 내쫓으려 하는가 하면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공무원노조)에 대해서는 노조 설립 신고서조차 받아주지 않고 있습니다. 해고된 사람도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규약을 문제삼았지만, 선진국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 대법원(2001년)은 해고자도 노조원이 될 수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파업에 참여했다고 철도노조 조합원 7600명을 직위해제했습니다. 과거 독재정권 때보다 더한 노동탄압입니다.
국가 운영은 어떻습니까?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열심히 한 검찰총장을 내쫓고 수사팀장을 경질했습니다. 검찰총장을 찍어내는 과정에는 청와대 행정관이 개입한 의혹이 드러났습니다. 그는 박 대통령의 최측근 비서관 밑에서 근무하고 있는데도 청와대는 “개인적 일탈”이라는 말만 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 국가보훈처 등 국가기관의 불법적인 선거개입에는 눈을 감거나 노골적으로 두둔하고 있습니다. 사법 정의에 대한 방해로서 중범죄에 해당합니다.
정치는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불법적인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장하나 민주당 의원과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한 양승조 민주당 의원을 제명하려고 하는 게 대표적입니다. 그들의 말이 듣기 거북했을지 몰라도 말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으려는 것은 민주주의를 질식시키는 일입니다. 소속 의원이 혐의가 확정되지도 않은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과거 군사정권의 공안통치가 자꾸 떠오릅니다. 또 시대적 과제인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스스로 공약으로 내걸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도 사실상 폐기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어떻게 될까요? 이런 식이라면 공고했던 민주주의를 거꾸로 돌린 대통령, 인권과 사회경제적 권리를 억압하고 반대편을 탄압한 대통령으로 기록되지 않을까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통치를 모방한 시대착오적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지도 모릅니다. ‘국민대통합을 이룬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과 다짐이 유효하다면 더 늦기 전에 나아갈 길을 다시 살펴봐야 할 때입니다.
김종철 정치부 기자 phillkim@hani.co.kr
김종철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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