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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9.7%, 153만표’가 속았다면 / 김이택

등록 2013-12-12 19:28수정 2013-12-17 08:41

김이택 논설위원
김이택 논설위원
1년 전 오늘, 서울 역삼동 한 오피스텔 문앞을 지키던 민주당 사람들이 철수했다. 서울경찰청 디지털증거분석팀은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의 컴퓨터를 넘겨받아 오후부터 분석을 시작했다. 그때 건네진 노트북과 데스크톱이 1년 내내 우리 정치판을 뒤흔들 판도라의 상자가 되리라고는 아마 국정원 사람들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이 결국 “대통령 사퇴” 주장까지 불러왔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수구보수언론의 응원 속에 “대선 불복”이라며 천주교 신부를 처벌하고 야당 의원은 제명하라고 난리다.

그러나 찬찬히 따져보면 “부정선거로 당선됐으니 사퇴하라”는 신부들과 장하나 의원의 주장은 틀린 데가 없다. 문재인 의원이 최근 펴낸 책에서 거론했듯이 한 여론조사기관 대표는 “두 후보 지지율이 뒤집혔다가 경찰 발표 뒤 박 후보 우세로 복귀했다”고 했다. 리서치뷰 설문조사 결과는 ‘부정선거’였음을 수치로 말해주고 있다. 유권자 2000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한 사람 중 9.7%는 ‘경찰이 사실대로 밝혔다면 문재인 후보를 찍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를 박 후보 득표수(1577만표)로 환산하면 153만여표다. 지난 11월19~20일 조사니까 그 이후 2200만건의 트위터글 공개 상황은 반영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당락을 뒤집고도 남을 만한 수치다. 여기에 트위터글 자체가 당시 부동층 유권자들에게 미친 영향도 추가돼야 하니 부정선거가 맞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도움받은 것 없다” “댓글로 당선됐단 말이냐”며 국민을 바보 취급하려 들었으니 사퇴 주장은 주권자인 국민으로서 당연한 권리 행사다.

따지고 보면 선거부정이 국정원만의 책임도 아니다. 10월8일 정문헌 의원의 첫 ‘엔엘엘’ 발언에서 12월14일 김무성 의원의 대화록 낭독까지, 선거 후반으로 갈수록 판세가 흔들리자 국정원은 물론 여권이 총동원돼 ‘종북 시나리오’를 써댄 의혹이 짙다.

그러니 장 의원과 박창신 신부가 못할 말을 한 게 절대 아니다. 시효가 지난 탓에 법적으로 ‘선거 불복’을 할 방법이 없을 뿐이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퇴진론을 불러온 건 바로 박 대통령 자신이다. 선거부정도 그렇거니와 공약 자체도 ‘사기성’이 농후하다. 후퇴한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만이 아니다. 후보가 되자마자 첫 방문지로 전태일 흉상을 찾았던 그가 전교조·전공노 탄압에 이어 철도노조까지 퇴로 없이 몰아붙이는 걸 보면 ‘100% 대한민국’ ‘국민 대통합’ 약속이 지켜지리라고 믿은 사람이 바보다.

정보기관엔 정치공작 부활시키고, 검찰엔 권력의 시녀 되길 강요하며, 역사 교과서는 유신코드에 맞춰 뜯어고치고 있다. 대선 전 “후보 주변 5.5m 안에 55살 이상은 들이지 마라”(홍사덕)더니 이제는 아예 70대의 ‘유신 법률가’를 옆에 끼고, 당에는 5공의 사위 출신을 실세로 앉혀놓은 게 한편의 사기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남은 4년, 성장기 18년을 궁궐 속 공주로 살아온 대통령이 스스로 달라지기를 기대하는 건 무망한 일이다. 깨어 있는 시민들이 제 목소리를 내는 수밖에 없다. 불법을 응징하고 다시는 꿈도 꾸지 못하게 하려면, 권은희·윤석열이 지켜낸 진실이 온전히 드러날 수 있도록 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제도를 뜯어고치는 데 감시의 눈을 부릅떠야 한다.

‘선거 부정’ ‘사기 공약’에도 대통령 지지도가 추락하지 않는 건 기울어진 정치구도뿐 아니라 보수편향의 언론구도 탓도 크다. 국기문란까지 옹호하는 수구보수언론의 곡필에는 응징이 필요하다. 153만표나 뺏기고도 아직 여당인 줄 착각하는 무능 야당, 민주당도 이제 정신차릴 때가 됐다.

김이택 논설위원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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