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뭔가 이상하다. 어떤 원칙이나 명분으로 포장하더라도 여야 대치가 너무 길었다. 새누리당은 이긴 정당이고 대통령은 대통합을 내걸고 당선됐는데 너무 공격적이고 속이 좁다. 여권 내부에서 타협론이 적지 않은데도 막무가내로 강경론만 득세하고 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문제도 아무리 따져도 지난 정권에서 벌어진 일인데 왜 저렇게 완강하게 버티나 싶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으면 뭔가 속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뭘까?
야당의 대응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각종 의혹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계속 밝혀지고 있어 야당으로서 그냥 물러설 수 없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너무 한쪽에 치우친 외골수 투쟁이다. 원외투쟁 등 강공을 펼치는데도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은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안철수 신당’이 등장하면 당 지지율이 반 토막 난다는 여론조사만 나오고 있다. 이대로 가면 1여 다야의 구도는 필연적이고, 당연히 지방선거 승리도 쉽지 않다. 그런데도 프레임을 바꿀 생각은 별로 없어 보인다. 왜 그럴까?
4자 회동을 통해 여야 간에 일시 휴전이 이뤄졌다. 여권으로선 청와대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뒷조사했다는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국면을 수습할 필요가 생겼다. 야권으로서도 지역구 예산을 챙겨야 하는 의원들의 요구를 외면하기 어려워 실리적인 숨고르기가 필요했다. 이런 각자의 필요 때문에 타협이 이뤄졌으나 대치가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니다. 일시적 봉합일 뿐이다. 언제고 싸움은 다시 격화될 수밖에 없다. 여야 모두 각자의 셈법이 있기 때문이다.
여권이 대선 때부터 지금까지 시종일관 견지한 전략은 ‘반노 정서’의 호명이다. 반노 정서를 환기해 보수를 결집하고, 그럼으로써 친박 대 친노의 대결 구도를 조성했다. 친박 대 친노의 대결 구도는 여권에 불리하지 않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친노로선 북방한계선(NLL)이나 정상회담 대화록 같은 어젠다에서 결코 물러설 수는 없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건드리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친노를 자극하는 어젠다로 친노 세력의 목소리가 커지면 자연스레 민주당의 리더십은 흔들리기 마련이다. 친박 좌장 서청원 의원이 ‘대선 불복’의 책임을 민주당의 리더십 부족에서 찾은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게 첫째 이유다.
친박 대 친노의 대결 구도에서 핵심 쟁점은 안보 이슈다. 민생 이슈가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방한계선을 포기했는지 여부, 정상회담 대화록 미이관 이유와 유출 여부 등이 쟁점이다. 이런 안보 이슈를 통해 여권은 종북 프레임을 계속 가동할 수 있다. 더 큰 이점도 있다. 후퇴를 거듭하고 있는 복지와 경제민주화 어젠다가 쟁점으로 떠오르는 걸 막는 효과다. 아직 먹고사는 문제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고, 부동산 등 일부 문제에서는 되레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놓고 정치적 의제가 형성되는 건 국정을 책임진 여권에 불리하다. 이게 둘째 이유다.
저들이 의식했든 안 했든 지금 친박과 친노 간에는 결과적으로 적대적 공생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디제이(DJ)와 와이에스(YS)처럼 이들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사실 정치인 박근혜의 입지는 야당 대표 시절 노무현 대통령과의 대결 노선을 통해 만들어졌다. 친노의 입장에선 집권 초기 4대 개혁 입법부터 박 대통령에게 계속 패배해왔기 때문에 ‘노-박 대전’은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다. 어쨌든 친박도 보수의 한 분파이고, 친노도 진보의 한 분파다. 친박과 친노가 서로를 호명하며 여야 대결 국면을 조성하는 건 성패를 떠나 서로에게 나쁘지 않다. 각 진영 내에서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공존, 정치 발전엔 매우 유해하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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