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인도 출신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 하버드대 교수는 민주주의와 기근의 관계를 비교적 명확히 제시했다. 경제적으로 부유하건 가난하건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나라에서는 기근이 발생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기근은 영국령 아일랜드와 같은 식민지, 대약진운동 기간의 중국, 세습왕조 치하의 북한과 같은 일당독재 국가, 에티오피아·소말리아와 같은 군사독재 국가에서 일어나곤 했다. 무척 가난했지만 민주주의가 나름대로 작동한 독립 이후의 인도나 아프리카의 보츠와나에선 기근이 발생하지 않았다. 일당독재와 같은 강력한 권위주의적 통치자들은 기근이나 다른 경제적 재난으로 권좌에서 쫓겨날 가능성이 별로 없기 때문에 적절한 방지책을 강구하지 않는다.(<자유로서의 발전>)
민주주의가 성숙하고 분배가 제대로 이뤄져야만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센 교수의 주장은 내년 5월 인도 총선을 앞두고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인도 출신인 그가 야당인 인도국민당의 총리 후보인 나렌드라 모디 구자라트주 총리의 기업친화형 성장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인도 경제가 상당히 성장했는데도 빈곤 문제가 심각한 것은 의료와 교육 등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인 만큼 성장 일변도 정책으로는 사회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게 센 교수의 주장이다.
집권 국민회의당은 간디 가문의 4세대 황태자 격인 라훌 간디 사무총장을 앞세워 분배문제 해결, 즉 빈곤층과 사회적 소외계층을 대변하겠다고 하고 있다. 인도 총선이 기업친화적인 야당과 서민친화적인 여당의 대결로 압축되면서 인도판 경제민주화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인도에서 간디 가문의 위력이 대단하다고 하지만 내년 총선 전망은 라훌에게 꼭 유리하진 않다. 라훌은 네루 초대 총리부터 인디라 간디, 라지브 간디까지 3대에 걸친 세 명의 총리를 잇는 후계자다. 하지만 국민회의당이 9년째 집권하면서 부패가 심각하고 경제성장도 주춤하고 있다. 서방의 분석기관들은 일단 친기업적인 야당의 승리를 점치고 있다.
백기철 논설위원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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