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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영원한 리베로’ 절친 ‘황새’의 비상 / 김경무

등록 2013-12-04 19:17

김경무 스포츠부 선임기자
김경무 스포츠부 선임기자
스타 선수나 명감독 이름 앞에 별명 붙이는 것을 좋아하는 스포츠 기자들이 만든 것 중 올해 가장 압권은 ‘황선대원군’이 아닌가 싶다. 애초 예상을 깨고 시즌 2관왕을 달성한 포항 스틸러스 황선홍(45) 감독한테 달아준 것이다. 외국인 선수 영입 없이 토종 선수들만으로 시즌 초반 돌풍을 일으키자 누군가 붙여줘 언론에 회자됐고, 황 감독은 보란 듯 축구협회(FA)컵에 이어 정규리그 우승까지 일궈내며 기세를 올렸다.

문득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 뒤 당시 핵심 멤버이던 황선홍 감독이 그해 10월 내놓은 자전적 에세이가 생각나 이리저리 뒤져봤다. 제목은 <황선홍, 그러나 다시…>. ‘황새’라는 별명으로 인해 가족들이 받은 충격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황새라는 별명을 듣는 사람들은 모두들 그냥 웃어넘겼지만 우리 가족들은 아무도 웃지 않았다. 상처가 있어서…. 제대로 먹지 못해 삐쩍 말랐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황새란 말 때문에 마음 아파했고, 밥을 짓던 동생은 그 말 이후로 가끔 물었다. 뭐 먹고 싶은 게 없냐고, 말해 맛있는 거 해줄게… 그렇게 말하는 동생이 엄마 같았다.” 어머니 없이 살아야 했던 어린 시절의 힘겨웠던 삶도 나온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때부터 국가대표로 활약한 ‘선수 황선홍’한테는 ‘비운’이라는 꼬리표도 늘 따라다녔다. 최정민→이회택→차범근 등 한국 축구 스트라이커의 계보를 잇는 스타로 주목을 받았지만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이름에 걸맞은 성과를 내지 못한 탓이었다. 1994 미국월드컵 때 볼리비아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이른바 ‘똥볼 슈팅’을 남발해 팬들의 도마 위에 올랐다. 1998 프랑스월드컵을 앞두고는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는 불운도 겪었다. 34살에 2002 한·일월드컵에 나가서는 폴란드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귀중한 선제골을 터뜨리며 한국 축구 4강 신화의 물꼬를 트면서 비로소 제대로 된 자리로 돌아왔다.

황선홍 감독은 홍명보(44) 축구대표팀 감독보다는 호적상 한 살이 많지만 같은 학번으로 절친한 사이란다. “포항 스틸러스와 대표팀에서 같이 선수 생활을 했고, 일본에서도 같이 뛰었어요. 요즘도 자주 전화통화를 합니다.” 황 감독은 이렇게 친분을 털어놨지만, 사실 지도자로서는 홍 감독보다 뒤처져 있는 상황이었다. 2008년 부산 아이파크 감독으로 3년 동안 있었지만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고, 2011년 포항을 맡아서도 시련이 많았다. 그러나 올해 클럽축구 지도자로서 본격적으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황새’의 새로운 비상이 시작된 것이다.

“감독님 너무 차분하세요. 절대 흥분하지 않습니다.” 포항 베테랑 수문장 신화용은 감독 스타일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리고 그의 지도력을 ‘포용의 리더십’이라고 표현했다. “선수들한테 밥을 사더라도 다 사지 일부한테 사준 적이 없어요. 너무나 고맙죠. 선수들한테는….” 윤희준 코치는 “감독님은 ‘열심히’라는 말보다는 ‘절실히’를 좋아한다”고 귀띔한다.

한국 축구는 이제 국가대표팀과 클럽축구 무대에서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홍명보·황선홍 두 감독이 주도하는 시대를 맞게 됐다고 할 수 있다. 황 감독은 장차 대표팀 감독에 대한 욕심도 숨기지 않고 있다. 사석에서 이런 말도 했다. “명보가 ‘내가 클럽팀 감독 맡으면 어떻게 하는지 너한테 물어볼게, 네가 대표팀 감독 맡으면 나한테 물어보라’고 했다.” 서로 다른 무대에서 주목받는 두 절친이 앞으로 지도자로서 서로 협력하면서 펼쳐나갈 선의의 경쟁을 지켜보는 재미 또한 아주 쏠쏠할 것 같다.

김경무 스포츠부 선임기자 kkm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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