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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열린 사회와 그 적들 / 이재성

등록 2013-12-01 19:13수정 2013-12-02 09:51

이재성 사회부 사건데스크
이재성 사회부 사건데스크
이른바 뉴라이트가 처음 출현했던 2005년, 학생운동권 출신의 한 뉴라이트 인사를 만난 적이 있다. 무슨 단체의 발기인 명단에서 이름을 보았을 때만 해도 긴가민가했는데, 신문 인터뷰 기사에 나온 얼굴을 보고 내가 아는 사람과 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학창 시절 목울대를 부풀려가며 종주먹을 흔들어대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고, 의문이 생겼다. 그는 왜 뉴라이트가 된 것일까.

당시 내가 출입했던 한 정부기관의 로비에 있는 커피숍에서, 주변의 손님들이 더이상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이어졌던 대화 혹은 인터뷰의 결론은 허망했다. 김일성이라는 유일신을 믿던 한 절대주의자가 그 실체를 깨닫고 실망하게 되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미국이라는 또다른 유일신을 섬기게 됐다는 걸 확인하고 나는 그가 가여워졌다. 그의 신앙(!)은 논리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정신적 진자운동의 결과였다. 김일성을 섬기는 주체사상이든 미국과 이승만·박정희를 숭상하는 한국의 우파들이든, 그 뿌리는 이견을 용납하지 않는 절대주의의 쌍생아라는 게 당시 내가 얻은 결론이었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한 계기이기도 했다. 새로운 우파-올드라이트의 독재주의에 친일 합리화 논리를 덧댄, 더욱 사악한 우파에 불과하지만-를 표방했던 뉴라이트의 핵심 인사들이 이른바 주사파 출신인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이 일으킨, 이외수 작가의 <진짜 사나이> 출연 논란 및 방송 누락 사건은 극과 극을 오가며 극단주의를 선동하는 위험천만한 절대주의자들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망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다른 주사파 출신 뉴라이트 전사들이 그랬듯이, 하 의원은 지금 또다른 절대주의를 전 국민에게 강요하고 있다.

하 의원이 문제 삼은 이 작가의 과거 발언(“천안함 사태를 보면서 한국에는 소설 쓰기에 발군의 기량을 가진 분들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은 국방부 발표에 대한 반론을 지지하는 사람들로서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얘기다. 문제는 사실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국방부 발표)을 신앙 차원으로 바꿔치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믿음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신도림역의 광신자처럼, ‘믿음애국, 불신종북’이라고 강변하는 꼴 아닌가. 천안함이라는 ‘후미에’(일본의 에도 시대에 기독교 신자를 색출하려고 예수의 모습을 새긴 금속판을 밟고 지나가게 한 행위)는 이미 야당이 추천한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낙마시켰고, 이번엔 이외수 작가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엔엘엘(NLL)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은, 심지어 조선일보조차 영해선이 아니라고 인정했던 엔엘엘 논란을 일으켜 지난 대선에서 재미를 본 뒤, 이제 와선 사상검증의 도구로 재활용하고 있다. 이제 ‘엔엘엘은 무조건 사수해야 한다’는 믿음에 동의하지 않는 모든 사람은 ‘종북’이다. 엔엘엘을 자유로이 오가며 우리 어민들을 울리는 중국 어선에 남북이 함께 대처하고, 남북의 군사적 충돌도 방지하려던 서해평화협력지대라는 포부마저 종북으로 전락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 ‘100% 대한민국’은 이렇게 실현되어 가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한때 우파들의 교과서로 널리 읽혔던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제1권의 마지막에서 두번째 문장을 읽어보자. “우리는 금수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으로 남고자 한다면, 오직 하나의 길, 열린사회로의 길이 있을 뿐이다.” 닫힌사회의 반대 개념으로서 열린사회란 이견을 허용하는 사회다. 포퍼마저 깔아뭉개는 이들은 우파도 보수도 아니다. 전체주의자들이다.

이재성 사회부 사건데스크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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