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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국민 위협 언어’의 추억 / 박창식

등록 2013-11-28 19:08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이 엊그제 “국내외의 혼란과 분열을 야기하는 행동들이 많다. 국민의 신뢰를 저하시키고 분열을 야기하는 일들을 용납하거나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박창신 신부의 시국발언을 문제 삼은 것인데, 깜짝 놀랄 정도로 표현이 공격적이었다. “용납 않겠다”거나 “묵과 않겠다”는 말은 상대방과 생각이 다를 때 대화를 하여 차이를 좁히는 게 아니라 권력 행사를 위협하여 무릎을 꿇리고야 말겠다는 뜻이다. 정치인이나 공직자는 물론이고 보통 시민들도 장난기의 발동이 아닌 다음에야 일상 대화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대통령이 권력 행사를 자주 위협하던 시대가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7년 2월4일 이선중 법무부 장관한테서 업무보고를 받고 이렇게 말했다.

“현 단계에서 우리 사회의 최고 가치관은 민족의 생존과 국가의 보위다. 반국가 반사회 반윤리 반시국적인 행위는 철저히 다스려야 한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유신체제를 지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도 극소수 인사 중에는 유신체제에 대해 불만을 갖고 민주주의와 자유가 어떠니 하며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궤변이라고 보며 아직도 이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앞으로 가차없는 법의 제재가 있어야 한다.”

용납 불가는 물론이고 엄단과 강력 제재 방침을 내세워 위협하는 것은 박정희 정권 말기에 일상화된 국정언어였다. 전두환 대통령도 비슷했다. 그의 11대 대통령 취임사다.

“정부는 대학에서 연구하고 공부하는 자유는 최대한 보장하겠습니다. 그러나 대학인들이 현실 정치에 뛰어들거나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로 나올 때 이것은 안보적 차원에서도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명백히 밝혀두고자 합니다.”

역대 대통령의 연설문을 비교해보면, 대통령이 위기상황에서 ‘권력 행사’를 시사하는 언어를 구사한 비율이 박정희 49.6%, 전두환 34.0%, 노태우 13.2%, 김영삼 6.4%, 김대중 3.9%, 노무현 0.9%였다고 한다.(김은정, <대통령 연설에 나타난 대통령의 수사적 역할>) 권위주의 시대와 민주화 시대에 대통령의 언어가 확 다름을 알 수 있다. 민주화 시대 대통령들은 “내 선의를 믿어달라”며 자세를 낮추고 이해를 구하는 어조로 말했다.

“국민 여러분 저에게 허물과 잘못이 있는 만큼 바른 자세로 더욱 열심히 노력해서 보상하도록 하겠습니다. 몇 배 더 성실히 보상하겠습니다. … 떳떳지 못한 사람을 그 자리에 두기에는 곤란하다고 국민이 인식할 때 언제든지 결단을 내리겠습니다.”(노무현 대통령 특별기자회견 2004년 3월11일)

권력 행사를 위협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투를 접하고 사람들은 깜짝 놀랐을 것이다. 민주화와 함께 사라졌던 박정희, 전두환 시대의 특색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그 시대에는 국민과 대통령의 생각이 다를 때 대통령은 국민들과 대화하고 소통하기보다는 힘으로 무질러버렸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투는 시대를 역행하며, 국민을 얕잡아보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언어 습관은 대개 성장기에 형성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20대 퍼스트레이디 시절에 아버지의 연설을 가까이에서 흠모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았을 것이다. 때는 1970년대 후반기로 박정희 정권 말기였다. 반독재 민주화운동이 거세지자 아버지가 말보다 힘을 앞세우는 철권통치를 강화할 때였다. 당시의 청와대는 지도자 수업을 하기에 좋은 환경이 전혀 아니었다.

아무튼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방식으로 권력을 잘 관리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권위주의 시대에도 약효가 흔들렸던 국민 통제 방식이, 민주화를 경험한 요즘 국민들한테 받아들여질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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