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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자기모순에 갇힌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 신주백

등록 2013-11-20 19:19수정 2013-11-20 20:47

신주백 연세대 인문한국(HK) 교수
신주백 연세대 인문한국(HK) 교수
지난 5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국회에서 “다양한 역사관이 있기 때문에 올바른 역사 교육을 위해서는 통일된 교과서가 필요할 수 있다”고 답하면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하자는 논의에 불을 지폈다. 여기에 집권당인 새누리당이 “국민적·국가적 통일성을 위해 역사 교과서는 국정으로 해야 한다”고 호응하고, 그 당의 실세 의원이 적극 움직이며 분위기를 다잡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일부 보수언론도 이들의 움직임에 보조를 맞추고 있고, 교육부 장관조차 국정제에 관한 의견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밝혔다.

역사관의 다양성 때문에 국가적으로 통일된 교과서가 필요하다는 말은 정부와 집권여당이 다양성을 곧 분열로 보고 있다는 증거다. 다양한 역사인식을 창조성의 원동력이자 사회적 활력의 원천으로 보지 않고 장애물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 발행은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진전을 토대로 하여 다양화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흐름과도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나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조차 시대적 흐름을 거역할 수 없어 집권여당일 때인 1997년 12월 제7차 교육과정 고시에 반대하지 않았고, 교과서 발행제를 국정제에서 검정제로 전환하는 데도 동의하였다. 당시 정부는 국가가 교과서 발행을 독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북한과 같은 일부 후진적인 독재국가에나 있는 제도라고도 했다.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교과서 내용을 보장해야 한다면서 교육의 중립성까지도 고려했다. 이 이유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현 정부와 집권여당이 자기모순에 빠진 논리가 국내용으로만 한정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자가당착에 빠져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은 한·중·일 3국이 협력하여 동북아 공동의 역사 교과서를 만들자고 제안하였다. 유럽의 경험을 들어 언급한 것이고, 대통령 자신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과도 연계된 발언이었다.

역사대화를 통해 역사인식을 공유하고 동아시아 지역의 화해와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역사대화를 추진하겠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 않다. 12년째 민간 차원의 역사대화를 하며 세 권의 공동 역사 교재를 낸 필자로서는 박 대통령의 발언에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싶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우려스러운 점도 있다. 역사대화는 나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고, 비록 자신의 역사인식에 불리하지만 그동안 생각하지 못한 역사해석이 도출될 수도 있으며, 합의에 다다르지 못할 때는 유불리를 떠나 공동으로 표기한다는 관점과 태도를 전제해야 한다. 그만큼 매우 유연한 사고와 열린 자세를 요구한다. 그것은 하나의 역사인식을 강조하고, 그것을 통일된 역사인식으로 간주하며, 그렇게 될 때만이 역사 교육이 강화된 것으로 생각하는 현재의 국정화 논리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공동의 역사 교과서를 발행한다는 것은 학교 현장에서 각국 정부가 인정한 교과서와 함께 경쟁하며 교과서로 사용한다는 의미이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 교과서’가 아니며, 보조 ‘교재’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 국정제 아래에서는 공동 역사 교과서를 사용할 수 없다. 국정은 한 종의 교과서만 사용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기모순에 빠진 정책이 확대재생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 교육과 역사 교과서를 이념 논쟁의 대상으로 간주하며 자신과 다른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을 종북으로 몰아 공격하는 데만 몰두하기 때문이다. 교육의 중립성이란 무엇이고, 세계화 시대에 한국인은 어떤 역사인식을 갖추어야 하며, 미래 한국의 핵심 전략 포인트를 무엇으로 삼고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동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주백 연세대 인문한국(HK)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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