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국정원 관련 새로운 팩트 쏟아냈지만 정리는 안된 느낌”

등록 2013-11-13 19:35수정 2013-11-13 22:47

제2기 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 위원들이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2기 1차 회의를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제2기 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 위원들이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2기 1차 회의를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창간기획 [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
2기 편집위 첫 회의 ‘이슈 점검’

<한겨레>가 지난 5월 창간 25돌을 맞아 ‘열린 편집국’을 표방하며 새로 발족한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가 어느덧 제2기 활동에 들어갔다. 제2기 열린편집위원회는 총 14명(사외 위원 10명, 사내 위원 4명)으로 구성되며, 사외 위원의 경우 제1기 열린편집위원 일부가 계속 참여하고 고윤덕·김재영·오지연·오창익·장보형 위원 등 5명이 새로 들어왔다. 위원장은 제1기에 이어 신인령 전 이화여대 총장이 계속 맡는다.

댓글 몇 개 식의 나열보다
뉴스분석 통해 본질 짚어줘야

뻔하지 않은 코멘트 발굴하고
제목도 독자에게 확 꽂혔으면

11일 열린 2기 위원회 제1차 회의에선 지난 한달간 새로운 팩트가 연일 쏟아지면서 긴박하게 전개된 국가정보원 사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화 파장, 밀양 송전탑 갈등,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청구 이슈를 중심으로 한겨레 지면을 평가하고 점검했다. 외부 위원들은 한겨레가 개별적으로 터져 나오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팩트의 홍수 속에서, 전체 그림을 독자들에게 일목요연하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미흡했다고 비판했다. 기사는 넘쳤으나 파편화·분절화돼 어지러운 측면이 있었고, “분석기사에 등장하는 코멘트가 뻔했다. 뭔가 의표를 찌르는 코멘트를 ‘발굴’하려는 노력이 아쉽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겨레가 팩트와 객관성이라는 언론 본분에 ‘지나치게’ 충실하다 보니 감성적인 기사나 편집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인령 위원장의 사회로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6층 회의실에서 열린 제2기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 1차 회의 내용을 정리해 지상 중계한다.

■ 국정원 사태, 1면 ‘원로·지식인 쓴소리’ 코멘트 식상해

신인령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가 오늘 회의부터 제2기 활동에 접어들었다. 위원회에 새로 참여하신 위원이 다섯분이다.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실 것으로 기대한다. 지난 한달 동안에도 역시 국정원 대선개입 이슈가 주요 기사로 비중 있게 보도됐다. 국정원 관련 기사가 매일같이 새로 쏟아져 나와 어느 대목에 초점을 두고 논의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려울 지경이다.

김영배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이 새로 드러나고 윤석열 전 국정원 대선개입 특별수사팀장의 수사 외압 폭로 이후 <한겨레>가 원로와 지식인 등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국가기관들의 선거개입 자체가 헌법적 가치를 파괴하는 것이라는 기사(<한겨레> 10월24일치 1·3면)를 실었다. 약간 보수적인 사람의 코멘트도, 또 현 정부 탄생에 기여한 사람의 코멘트도 포함하고 있었다. 보수언론과 새누리당이 그까짓 댓글 때문에 선거 결과가 뒤집힐 수 있었겠느냐면서 ‘대선 불복’ 논리로 꼬리자르기 식 대응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원로·지식인들의 평가 방식으로 사태의 성격과 논점을 제시해준 것 같다.

김재영 그 ‘원로·지식인 쓴소리’ 기사는 어떤 이슈가 터졌을 때 전문가들의 코멘트를 딴 뒤 1면 기사에 프레임을 잡고 3면 해설기사에선 사진과 주요 코멘트를 싣는 전형적인 스타일로, 사실은 신문들이 궁여지책에서 내놓곤 하는 유형에 속한다. 여기서 전문가라는 이들은 대개 이쪽에 맞는 이야기를 해줄 만한 사람들이고 또 구색 맞추기로 넣는 보수적 인물들 역시 <한겨레>라는 점을 고려해 일부러 거기에 맞는 코멘트를 하곤 한다. 따라서 이런 기사는 사회적으로 힘을 갖거나 충격을 주기 어렵고, 사태의 국면을 바꾸기란 어렵다. 국정원 문제가 거의 매일 새로운 팩트로 터져 나왔는데 나중에 관련 기사들을 모아 한꺼번에 몰아 읽어도 사태를 파악하기 힘들 지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원이 개입한 트위터 글이 몇 개라는 식으로 하나하나 지면에서 말하는 게 과연 독자에게 다가올 수 있을까 의문이다.

1면 머리기사로 간혹 ‘뉴스분석’을 싣고 있는데 내 생각엔 거의 매일 이 뉴스분석을 내놓아야 한다. 종편 <제이티비시>(JTBC)의 ‘뉴스9’를 보면 손석희 앵커가 오프닝 멘트에서 오늘은 국정원 관련 트위터 글 몇 개가 추가로 드러났다는 식으로 흐름을 간명하게 하나씩 짚어준 뒤 본격적인 방송 뉴스를 내보낸다. 이런 오프닝 멘트 식으로 한겨레도 국정원 사건과 관련해 오늘 업데이트된 새로운 내용이 뭐가 나왔는지 간단히 정리해주고 나서 개별 기사에서 심층 분석하는 방식으로 해야 독자들이 사태의 전개를 따라가면서 이해하기 좋을 것 같다.

오창익 다음달이면 지난해 대선 직전에 터진 국정원 사건이 벌써 1년이 된다. 국정원 사건은 어떤 면에선 빤한 사건이지만 관련 기사가 하도 많아 혼란스럽다. 한겨레 토요판에 ‘친절한 기자들’ 코너가 있는데 국정원 사태의 국면들을 그때마다 정리해주고 사태의 근본적인 성격이나 보는 관점에 대한 원칙도 천명해주면 좋겠다. 여러 기사에 걸쳐 새로운 상황을 쫓아가고 나열하면서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추적하기보다는, 정리가 필요한 때 같다. 10월24일치 전문가 쓴소리 기사에 등장한 이들의 직함만 봐도 이분들이 어떤 얘기를 할지 짐작할 수 있다. 1989년 서경원 의원 방북사건 때 한겨레 기자가 국가보안법상 불고지죄로 기소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한겨레 지면에 실린 각계각층의 의견 중 <동아일보> <중앙일보> 편집국장의 코멘트도 있었다. 그런 식으로 뭔가 의표를 찌르는 코멘트를 ‘발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 말을 할 것 같지 않은 사람이 한겨레가 지향하는 논조에 부합하는 코멘트를 할 때 기사는 더욱 빛난다.

■ 국정원 기사, 앨범 단위 아닌 곡 단위 내려받기 식으로 파편화

장보형 경찰의 민주노총 시위 물대포 진압과 관련해 어제 한겨레 누리집에 경찰 진압 비판 기사가 실렸다. 흔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파워 글을 쓰는 유명한 사람들의 코멘트에다가 일반인들이 인터넷에 올린 짧은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간접적으로나마 생생한 육성으로 듣는다는 다소 신선한 측면도 있으나 비판 논조에 부합하는 대충 빤하고 비슷비슷한 사람들의 의견들만 모아놓은 것 같았다. 정작 그 기사에 달린 댓글엔 경찰 진압에 대해 정반대의 의견을 말하는 사람들의 얘기가 달려 있다. 한겨레는 늘 이렇게 끼리끼리만 보여주고 말하는구나 하는 식상한 느낌이 들었다.

박찬수 마침 ‘전문가 쓴소리’ 기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오늘부터 새로 참가하시는 열린편집위원들께 한겨레 내부 위원으로서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다. 한겨레 지면에 대한 ‘쓴소리’와 비판을 많이 해주실수록 열린편집위가 그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게 된다. 한겨레가 고생하는데 또는 잘하고 있는데 이 정도는 봐줘야 한다거나, 한겨레의 진보적인 지향을 미리 고려해서 얘기하지 마시고 느낀 그대로 가감 없이 쓴소리를 많이 해달라. 전문가 코멘트가 식상했다는 지적에 대해 한겨레 편집국 내부의 이야기를 잠깐 들어보면 좋겠다.

임석규 편집국에서도 국정원 사태와 관련해 수많은 팩트의 홍수 속에 독자들이 길을 잃고 혼란스러울 수 있겠다는 고민을 했다. 그래서 사태의 의미와 성격, 해법에 대해 정확하게 정리해주는 지면으로 ‘원로·지식인 쓴소리’를 게재했다. 그 제목이 ‘헌법 파괴’였는데, 편집회의에서 열띤 논쟁이 있었다. ‘불공정 선거’를 제목으로 가져갈 것인지, ‘민주주의·헌법 파괴’가 사태의 정확한 성격인지를 두고 토론을 벌인 결과 민주주의를 흔드는 헌법 파괴로 가는 게 맞겠다는 쪽으로 정리됐다. 국정원 사태를 차분하게 정리해주는 기사를 열린편집위원들께서 요구했는데, 편집국에선 이전에 신문에 썼던 내용을 또 쓰는 건 뭔가 뉴스가 아니라는 강박감이 알게 모르게 있다. 그러나 독자들이 팩트의 홍수 속에 헛갈릴 수 있으므로 기존에 나온 팩트들도 뉴스분석 같은 꼭지로 새롭게 포장해 더 정교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 국정원 사건에 대해서도 독자들이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기획이 필요한 것 같다.

박용현 ‘원로·지식인 쓴소리’ 기사는 제가 맡고 있는 사회부에서 발제한 것인데 개인적으로 제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과 시민들로부터 ‘이 정도로 국정원의 선거개입이 드러났으면 대다수 사람들이 크게 분노해야 마땅하고 사실상의 부정선거라고 주장할 수도 있는 사안인데도 그런 분위기가 별로 없고 너무 조용한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 문제의식과 징후가 저변에 있었고 이를 어떻게 신문에 기사로 효과적으로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다소 평이한 방식으로 전문가들 이야기를 듣는 형식을 취했다. 기자들이 이미 기사로 쓴 팩트들을 다시 지면에 싣는 걸 본능적으로 싫어하지만 이는 공급자 위주의 생각인 듯하다. 편집국 부서장으로서 독자 중심으로 기사를 기획하고 작성하는 방식을 좀더 고민해보겠다.

※ 이미지를 누르시면 확대됩니다.

전교조 사태 정권탄압 부각
학생·학부모 의견 더 들었어야

안도현 재판도 한쪽 주장 치중
다각적이고 풍부한 접근 못해

밀양 송전탑 현지 상황 다루다
원전이라는 애초 관점 흐려져

김재영 음악을 앨범 단위가 아니라 곡 단위로 내려받는 식이랄까, 그런 식으로 국정원 관련 기사가 파편화되고 분절화돼 있는 느낌이다. 관련 기사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맥락이 쉽게 짚이지 않는다. 10월24일치 5면 “여당, 대선캠프, 국정원, 사이버사령부 ‘3각 연계’ 정황”기사에서 관련 인포그래픽을 실었는데 그런 식으로 한눈에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시각물을 1면에 매일 업데이트하는 방식으로 보여주면 여러 복잡한 기사들이 연결되고 사태 전개 국면을 간명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한겨레가 (객관성이라는) 언론의 본분에 지나치게 충실하다는 생각도 든다. 10월21일치 1면 머리에 “국정원, 대선전 석달간 ‘하루 510건’ 집중 트위트”를, 3면 분석 기사에선 “문재인 대북관 간첩수준”, “안철수는 목동 황태자 비방” 제목의 기사를 실었는데 1면과 3면의 제목을 바꾸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한겨레는 팩트만 뽑아서 전달하려는 지나친 강박관념이 있는 듯하다. 직관적으로 호소하는, 즉 헤드라인(제목)을 봤을 때 딱 와 닿아 읽어보도록 하는 편집이 좀 떨어지는 듯하다.

■ 팩트에 기반한 기사 외에 감성적 접근의 제목도 뽑을 필요 있어

오창익 1987년에는 김수환 추기경의 한 말씀으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시위 국면이 전환되었는데 지금 우리 사회엔 그런 정도의 영향력을 갖는 원로가 별로 없어 보인다. 전문가 코멘트도 한 방법이겠으나 국정원 사태는 국정원법 위반이고 헌법 파괴라는 그 원칙과 근거, 즉 관련 조문 등을 도표로 큼지막하게 제시하는 방식으로 독자에게 명백한 불법이고 헌법 파괴라는 점을 계속 상기시키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하겠다. 한겨레가 창간 이후 한국 사회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해왔지만 그 사명 측면에서 지금은 훨씬 중요한 시기다. 언론 지평이 왜곡돼 있기도 하고 박근혜 정권이 독주하면서 유사 파시즘의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 이 시기에 한겨레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크다.

조계완 김재영 위원님이 ‘너무 점잖은 한겨레’를 말했는데 한겨레가 국정원 사태를 주도적으로 보도하고 있으나 사태의 전개 양상과 국면에 따라 타이밍에 맞게 치고 나가면서 여론을 선도하고 견인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원로·지식인 쓴소리’를 실은 그날치 4면에 문재인 의원이 ‘불공정 대선, 박 대통령의 무거운 책임’이라고 발언한 내용을 기사로 실었다. 다른 신문들은 대부분 1면에 이 기사를 게재했다. ‘불공정 대선’ 표현이 ‘대선 불복’이라는 여당 프레임에 말려들 우려를 고려했을 수 있지만 불공정 선거나 부정선거라는 표현 사용을 한겨레가 자제하거나 주저하고 있는 듯하다. 11월5일치 안철수 의원의 국정원 사태 특검수사 제안도 별도의 기사 없이 사진 기사로 처리하는 데 그쳤다. 사태의 급박한 전개나 국면 전환을 잘 짚어내거나 언론으로서 국면을 형성해가는 기능에서 다소 미흡했던 것 같다.

김영배 감성적인 보도도 날카로움을 가질 수 있다. 예컨대 국정원 댓글 여직원이 국회에 출석했을 때 약간 살이 쪄서 본인이 맞느냐, 혹시 가짜 아니냐는 논란이 잠깐 있었다. 한겨레가 국정원 사태를 보도할 때 팩트에 기반한 이성적인 접근만 하기보다는 다소 감성적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서는 보도도 해볼 필요가 있다.

신인령 2면에 실리는 한겨레 만평이 감성적인 접근을 잘하고 있는 듯하다. 국정원 문제와 관련해 선명하고 때론 선동적이기도 한 내용이 간혹 나오는데 매우 짧지만 잘 정리해주고 있다. 신문 기사 제목도 이런 식으로 감성적으로 뽑아볼 필요가 있다.

오창익 11월8일치 2면 만평에 박근혜 대통령이 한복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와 관련해) 보복도 좋아한다는 그림이 실렸다. 같은 날 1면 ‘긴급진단’ 기고 글의 끝 문장에도 “지난번 대선 티브이 토론 때 ‘떨어뜨리려 나왔다’고 발언한 이정희 후보가 경솔했던가”라고 돼 있는데, 한겨레가 선거 승자의 정치 보복 프레임 측면에서 진보당 정당해산 문제를 (다소 감성적이더라도 과감하게) 기사로 다뤄볼 수 있었을 듯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말했지만 정치 보복을 하지 않는다는 게 우리 헌정사에서 중요한 원칙이자 약속이지 않았나.

신인령 이제 전교조 법외노조화 사태를 다룬 기사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보자.

후지이 다케시 정권에 의한 전교조 탄압 차원에 집중해 보도하고 있으나 다른 각도에서, 즉 전교조 법외노조화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이 매우 적은 이유를 고민해보는 접근이 필요하다. 그동안 보수 쪽을 중심으로 전교조를 무조건 나쁜 집단으로 규정하고 거부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학교 현장에서, 특히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전교조와 법외노조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취재해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런 기반에서 전교조도 힘을 얻고 더 잘 싸울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엔 자기가 다니던 학교 교실에서 전교조 선생님이 곧바로 연행되는 걸 목도하고 그런 학생들이 대학에 가서 학생운동을 하곤 했다.

오지연 전교조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팽배해 있는 듯하다. 전교조 법외노조화에 대한 판단을 할 때 학생들의 의견이 중요하다. 참교육을 지향하는 선생님들의 처지와 상황은 공부하는 학생들의 학교 환경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이다. 이번 전교조 사태를 한겨레는 지나치게 정치적 논쟁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학생 등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기사에 많이 담아야 한다.

■ 국민참여재판 논리와 근거, 정교함과 풍부함 다소 미흡

오창익 “‘법 위의 시행령’ 정부가 법치 흔든다”는 제목의 기사(<한겨레> 11월4일치 1면)에서, 전교조 탄압에 대한 정치적 배경보다는 시행령을 남용해 법외노조화한 것에 초점을 맞춰 지적했다. 좋은 방향이었음에도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안내하고 전달하지는 못한 듯하다. 기본권 제한은 법률로만 할 수 있다는 원칙을 굵은 글씨로 제시하면서 정부의 조처가 법을 지키지 않는 무리한 탄압이며 황당한 것이라는 사실이 쏙 들어올 수 있게 해주었다면 좋았겠다.

고윤덕 법외노조화와 시행령을 둘러싼 문제는 법률적으로 그리 간단하지 않다. 교원노조법률에 교사 아닌 자가 가입할 경우 노조로 보지 아니한다는 규정이 명시돼 있다. 법률에 그 부분이 없다면, 시행령만을 근거로 ‘노조 아님’ 통보를 함으로써 교원노조법상 노조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한 정부의 조처에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교조 사태는 한겨레가 ‘법 위의 시행령’ 기사에서 다룬 그 외의 다른 사례들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된다. 오히려 교원노조법 자체의 문제나 시행령 규정이 도입된 배경 등 연혁적인 부분에서 다룰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덧붙여, 요즘 기사에 법원 재판 기사가 굉장히 많다. 취재할 때 마감 시간에 쫓겨서 그런지 분석과 설명하는 코멘트 내용이 한겨레는 좀 부족한 것 같다. 최근 안도현 시인 사건 국민참여재판 기사의 경우 다른 신문은 같은 날 관련 분야 교수 인터뷰를 따서 넣는 등 다각도로 접근한 반면, 한겨레는 재판 당사자와 그에 우호적인 쪽의 인터뷰 중심으로 실었다. 며칠 뒤에는 선거법이나 명예훼손 사건이 국민참여재판에 적합한 이슈인지를 다루는 기사를 실었다. 이런 사건일수록 법리적 판단과 사실관계 판단 중 어느 쪽이 관건이 되는지가 국민참여재판 대상 사건인지를 가르는 주된 요소일 것이다. 다른 어느 신문은 법리가 복잡하므로 국민참여재판으로 하기에 맞지 않는다는 어떤 법관의 코멘트를 싣고 있었다. 한겨레는 상식으로 해결할 만한 사건이므로 국민참여재판에 더 적합하다고 했는데 그 의견을 말한 법관의 이름은 명시하지 않았다. 이름을 쓰지 않았다면 그 주장의 논리에 대한 근거를 좀더 풍부하게 실어주는 게 좋았겠다.

박용현 그 기사는 법률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 시민의 상식에 입각한 판단도 재판 결과에 반영하자는 국민참여재판 도입의 취지에 집중했다. 그래서 도입을 주도했던 법관의 코멘트 등을 넣었고 실명 보도를 원치 않아 익명으로 처리한 것이다. 정치적 사건이란 이유로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제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사건일수록 시민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편집국에 있었다. 취재 과정에서 현직 법관들의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나 후보자 비방 또는 명예훼손의 법리가 크게 난해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고, 그런 취재를 바탕으로 기사 방향을 잡았다. 안도현 시인 같은 사건일수록 공익적 행위였는지 아니면 개인적이고 정파적 이익을 위한 행동이었는지가 중요한 축인데 이를 꼭 법관들만이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안도현 시인의 행위가 선거주권을 행사할 때 나의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는 것이었는지는 유권자들이 더 잘 판단할 수 있다.

고윤덕 기사 작성의 그런 취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선거법 위반 사건은 관련 법률 자체도 자주 바뀌고 재판의 결론도 법률 전문가들조차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사실관계가 확정되더라도 관련 법률을 적용해 처벌할 건지, 즉 법리를 적용하는 건 지금까지 법관의 영역이라고 여겨져 왔다. 그런데 선거법 사건이 국민참여재판에 적합하다고 기사에서 주장하게 되면, 지금까지 처리돼온 다른 수많은 사건들은 일반 시민의 건전한 상식에 따르면 달리 판단될 수 있었다는 얘기로 확대될 수 있다. 이런 대목을 기사에서 함께 정교하게 짚어줄 필요가 있다.

■ 밀양 송전탑, 원전 문제라는 본질적 관점 흐려져

신인령
전교조 문제에서 국민참여재판으로 화제가 넘어왔다. 이제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청구와 밀양 송전탑 등 다른 이슈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후지이 다케시 밀양 송전탑 사태에 대한 현지 대치상황 보도도 중요하지만 구도 자체를 약간 전환할 필요가 있다. 밀양 송전탑을 초기에 보도할 때 원전 수출 문제를 그 배경으로 언급했는데 언제부턴가 그 관점이 사라지고 상황 전개 위주로 보도하고 있다. 밀양 사태를 끊임없이 원전 문제로 다뤄야 독자들이 아, 이게 우리의 문제이구나 하는 식으로 여길 것이다.

신인령 덧붙이면, 밀양 사태와 관련해 원전 문제를 조금씩 다루고는 있으나 원전이 값싸고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라는 (정부의) 주장을 본격 비판하면서 짚어주지는 못하고 있다. 엊그제 연이어 원전 확대정책 비판 기사(<한겨레> 11월8일치 15면, 9일치 8면)를 실었는데, 이 원전 문제를 밀양 송전탑 문제와 연결해 썼으면 독자들이 더 관심을 갖고 읽었을 것 같다.

오지연 몇차례 밀양 할머니들이 시위하면서 울고 있는 사진을 실었다. 대학생 시각에서 볼 때 그런 사진은 지나치게 감정에 호소하는 듯하다. 그보다는 송전탑과 원전의 관계라는 큰 구도에서 사태를 다뤘으면 한다. 진보언론이라 해서 진보성향 사람들한테만 읽히는 신문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프레임에선 진보적 성향을 담되 기사의 내용은 진보와 보수 양쪽의 의견을 수렴하고 팩트 위주의 전달을 통해 판단은 독자들이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좋겠다.

김재영 통합진보당과 관련해 토요판에 ‘신매카시즘의 시대’ 연재물을 싣고 있는데 전교조 문제도 이 기획에 묶어서 최근의 흐름을 잡아갈 필요가 있다. 정부가 왜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법외노조화했는지 그 이유를 한겨레 지면의 전문가 인터뷰에서도 쉽게 해소하기 어려웠다. ‘엑스트라 쥐어짜는 드라마왕국’ 시리즈’(<한겨레> 9월30일치 9면 등)는 매우 좋은 기사다. 다만 보조출연자 세계에 그런 관행이 만연해 있다는 걸 기자들이 잘 몰랐던 건 아닐 것이다. 지금에 와서 기사를 쓴 건 어떤 의미에선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고발해야 할) 기자의 직무유기라고 할 수도 있다. 사실 감정노동(<한겨레> 10월31일치 2면 등)이나 엑스트라 문제가 우리 사회에 횡행하고 있는 데엔 언론의 책임도 있다.

장보형 감정노동 시리즈는 우리 사회에서 취약한 고리로 놓여 있는 서비스 노동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국 서비스 노동자들의 과다노동과 과잉친절에 대해 기업의 대고객서비스 윤리, 나아가 고객 입장에서 윤리 헌장을 제정해보자는 쪽으로 확대하면 어떨까 싶다. 고용한 기업에 대해서는 과잉친절 요구를 규제하고, 서비스를 받는 고객도 노동자에게 이런 것까지 요구하는 행위는 하지 말자는 따위의 헌장을 만들 수도 있을 법하다.

정리 조계완 콘텐츠평가실 심의위원 kyew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부당 지시 왜 따랐냐”…윤석열 ‘유체이탈’ [2월7일 뉴스뷰리핑] 1.

“부당 지시 왜 따랐냐”…윤석열 ‘유체이탈’ [2월7일 뉴스뷰리핑]

[사설]“탄핵되면 헌재 부수라”는 인권위원, 그냥 둬야 하나 2.

[사설]“탄핵되면 헌재 부수라”는 인권위원, 그냥 둬야 하나

[사설] ‘모든 책임 지겠다’는 사령관, 내 책임 아니라는 대통령 3.

[사설] ‘모든 책임 지겠다’는 사령관, 내 책임 아니라는 대통령

보수의 헌재 흔들기는 ‘반국가 행위’ 아닌가 4.

보수의 헌재 흔들기는 ‘반국가 행위’ 아닌가

[사설] 자신 위해 싸우라는 윤석열의 ‘옥중 정치’, 불복 선동하는 것인가 5.

[사설] 자신 위해 싸우라는 윤석열의 ‘옥중 정치’, 불복 선동하는 것인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