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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원전 묵시록 / 김영배

등록 2013-11-10 18:57수정 2013-11-10 18:58

김영배 경제부장
김영배 경제부장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진 2011년 3월11일, 나는 가족과 함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주도인 롤리의 어느 작은 마을에 머무르고 있었다. 1년에 걸친 미국 연수를 마무리짓는 시점을 넉달가량 앞둔 때였다.

태평양 건너 아득히 멀리 떨어진 내게도 그 원전 사고는 실감나는 공포였다. 가까운 회사 동료가 도쿄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었던데다 후배 몇몇이 일본 현지로 급파된다는 소식을 회사 온라인망으로 접해 공포심은 더해졌다. 일본 동북쪽 앞바다의 대지진과 그에 따른 거대한 쓰나미의 파장이 미국 서부 해안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미국 텔레비전의 긴급보도 또한 그 사고를 먼 나라에서 터진 남의 일로만 여길 수 없게 만들었다.

연수 기간 거주하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도 원자력발전소가 있다는 얘기를 누군가에게서 듣고 ‘거기서 사고가 나면 어떻게 될까’에 대한 묵시록적인 가상 시나리오를 그려보면서 부르르 몸서리를 치던 기억도 새롭다.

박근혜 정부 또한 원전을 사실상 확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는 소식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의 악몽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만들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35년 전체 발전설비 가운데 원전의 비중을 현재(26.4%)보다 높은 29% 수준으로 정할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주최 공청회에서 정부 당국자가 “2035년 원전 비중을 민관 합동 워킹그룹에서 권고한 범위(22~29%)의 상한에 가깝게 결정해야 한다”고 밝힌 것은 새달 발표될 정부의 방침을 공식화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원전 비중 29%의 의미는 자못 심각하다. 정부의 2035년 전력수요 전망치를 고려할 때 모두 41기의 원전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현재 보유한 원전 23기, 건설중인 5기, 2024년 준공 목표로 잡혀 있는 6기 외에 7기를 추가로 지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에 수립한 계획(2030년 기준 42기)과 별 차이 없는 원전 확대 정책이라는 비판은 그래서 매우 타당해 보인다.

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이 ‘원전 마피아’나 관련 산업계의 이해관계만을 중요하게 반영한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싶지는 않다. 정부 나름대로 고심한 끝에 가닥을 잡고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올여름만 해도 전력난으로 대규모 정전 사태를 겪는 것 아니냐며 하루하루를 초긴장 상태로 보냈으니 정부로선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본다. 더욱이 전기 수요는 나날이 늘고 국내의 에너지 자원은 매우 빈곤한 실정임을 부인하기도 어렵다.

다만, 그래도 의문은 자꾸 생겨난다. 원전의 발전 단가가 낮아 ‘경제적’이라는 정부의 논리를 반박하는 쪽에서 제시하는 근거들에 끌리는 대목이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원전 사고 위험에 따르는 비용은 물론이거니와, 액화천연가스(LNG)에 대한 감세 추진 움직임, 셰일가스 도입에 따른 엘엔지 가격 하락, 송전탑 건설 비용 상승 따위를 고려할 때 원전의 경제성을 주장하는 정부 쪽의 목소리가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더욱이 정부의 원전 해체 비용이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돼 있다는 사실도 <한겨레> 보도로 드러나지 않았는가.

세월의 힘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어서 2년여를 지내는 동안 후쿠시마의 악몽도 가물가물해지던 터였다. 우리가 전기 없인 하루도 살 수 없는 처지에 빠져 있고 그 상당 부분을 원자력발전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현실 아니냐는 편안한 인식에 다시 녹아들었던 것 같다. 반성 삼아 원전에 더 관심을 갖고 바른 인식에 이르려는 노력을 기울여볼 생각이다. 올겨울엔 내복을 갖춰 입고 집안 난방 온도를 좀더 낮추겠다는 결심과 함께.

김영배 경제부장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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