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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코드 맞추기 힘드시죠? / 김회승

등록 2013-10-29 19:05

김회승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김회승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청와대 회동’을 둘러싸고 위증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동양 사태와 관련해 청와대와 대책을 협의한 사실을 부인한 게 화근이 됐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대통령께 직접) 보고한 적은 없다”며 어물쩍 피해갔는데, 산업은행이 청와대 회동 사실을 순순히 시인하는 바람에 들통이 나 버렸다.

도대체 금융 정책·감독 수장들이 사회적 파장이 큰 문제를 두고 청와대와 의논한 사실을 왜 굳이 숨기려 했을까. 정확한 속내는 알 도리가 없지만, 괜히 청와대로 불똥이 튀는 것보다, 그냥 ‘보고 누락’이 낫다고 판단했을 것 같다. 윗선에 누가 되지 않으려는 충심이 빚은 해프닝인데,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농담처럼 하는 이야기 중에 ‘공산당이 집권해도 살아남는 게 관료’라는 말이 있다. 집권 세력의 국정 철학을 잘 수행하는 게 본분이라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박근혜 청와대’와는 코드를 맞추는 데 쩔쩔매고 있는 듯하다. 왜 그럴까? 얼마 전 경제 관료는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사례를 들었다. “정치인 출신이고 그것도 최측근으로 불리던 장관이 결국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지 못해 물러난 것 아니냐. 우리는 어떻겠느냐. 아무리 안테나를 돌려도 (대통령의 뜻이) 잘 파악이 안 돼 답답할 때가 많다.”

‘코드 맞추기’ 실패 사례는 적지 않다. 지난 8월 세법 개정안 소동도 그중 하나다. 기획재정부는 중산층 세원을 늘리는 나름 야심찬 세법 개정안을 내놨는데, 박근혜 대통령의 “원점 재검토” 말 한마디에 며칠 만에 없던 일이 됐다. 조원동 경제수석까지 기재부를 거들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기재부 세제실 관계자는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세금 폭탄론 등 비판 여론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너무 쉽게 방향을 틀었고, 대장(현오석 부총리)도 너무 쉽게 물러나 기운이 쑥 빠지더라.” 이런 트라우마 때문일까. 현 부총리는 대통령 말씀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안전운행’으로 방향을 잡았다. 대통령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중소기업 사장을 업어주기 하고, 우리 경제를 난데없이 ‘벼랑 끝 버스’로 몰아가기도 한다. 안전운행이 ‘코드 이탈’은 막아줄지 모르나, 경제 주체들에게 신뢰와 진정성을 줄 수는 없다.

이보다 한달 전에는, 신제윤 위원장이 혼쭐이 났다. 금융위가 공식 발표한 금융소비자 보호기구 설립안을, 대통령이 하루 만에 공식 퇴짜를 놨다.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실도 허둥지둥한 걸 보면, 물먹기는 마찬가지였다. 경위야 어찌됐건, 대통령의 의중도 모르는 장관이 됐으니, 스타일을 세게 구긴 셈이다. 취임 초 강성 발언을 쏟아내던 신 위원장의 공식 발언이 요즘 크게 줄었는데, 의기소침이거나 자중자애, 둘 중 하나일 게다.

다른 경제 장관들의 ‘코드 맞추기’ 성적표는 어떨까?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은 교수 시절 연구했다는 이론을 과감하게 현실로 옮겼다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경제 상식에 반한다는 우려에도 ‘목돈 안 드는 전세’ 상품을 내놨는데, 거의 팔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창의성에서는 백점일지 모르나, 현실성은 빵점에 가까우니, 칭찬받기는 힘들어 보인다.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창조경제’ 주무 부처임에도 여전히 ‘창조경제란 무엇인가’를 연구중인 듯하고, 창조경제 진도가 느린 때문인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대기업 투자를 구걸하는 데 여념이 없다. 국정 철학을 실행하는 게 관료의 몫이니, 대통령의 뜻을 좇는 건 마땅한 소임일 게다. 그런데 정작 대통령의 의중을 몰라 우왕좌왕한다면, 이게 과연 관료들만의 탓일까.

김회승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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