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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과 대처의 길 / 정정훈

등록 2013-10-29 18:59수정 2013-12-17 08:54

정정훈 변호사
정정훈 변호사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지를 정치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경제와 관련해서는 부친 박정희의 이미지를, 복지와 관련해서는 모친 육영수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대중들에게 인식시켜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차용하는 또 하나의 이미지는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의 이미지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박근혜 대통령이 재킷 가슴 왼쪽 한참 위에 커다란 브로치를 다는 등 옷 입는 스타일까지 대처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대통령 스스로도 2007년 신년사를 통해 영국 대처 총리가 영국병을 고쳤듯이 “대한민국이 앓고 있는 중병을 고쳐놓겠”다고 역설하였다.

대처는 ‘영국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노조와 정면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는 신념으로 파업 노동조합원들을 ‘내부의 적’으로 규정했다. 노조를 탄압하면서 “죄송하군요. 다음에는 그런 일이 있으면 기마대가 아니라 탱크를 보내겠습니다”라는 악명 높은 말을 남기기도 했다. 2007년 당시 박근혜 후보의 신년사 중 “귀족 노조의 불법 파업이나 시위 등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내용은 대처의 입장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대통령 당선 이후 박근혜 정부가 노사관계에 대하여 대처의 길을 따라갈지 여부는 적어도 구체적인 정책 영역에서는 불분명했다. 실제로도 고용률 70% 달성 이외에는 이렇다 할 고용노동정책이 제시되지도 않았다. 2012년 대선 직후 7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끊고,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 등 고공농성이 이어졌다. 그러나 국민행복 시대를 약속하며 취임한 대통령은 묵묵부답이었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을 ‘반(反)노동’이라고 평가했다면,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은 ‘무(無)노동’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정책에 대한 ‘침묵의 정치’는 오래가지 않았다. 정부는 ‘반노동’ 정책의 성격을 분명히 하면서, 대처리즘의 길을 따르고 있다.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와 전국교직원노조(전교조)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시금석이다. 정부는 고용노동부와의 법적 검토와 실무협의를 거쳐 규약을 개정했는데도 합리적 이유 없이 전공노의 설립신고를 반려하고, 단 9명의 해직자를 이유로 전교조를 법외노조화했다. 대처 정부가 출범하면서 영국 교원노조 소속 교사들이 탄압받았던 장면이 오늘에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전공노의 설립신고는 담당 과장의 전결사항인데도, 정부가 국무총리실 주재로 범정부 차원의 사전 대책회의를 열면서까지 전공노 합법화를 불허한 이유는 근본적으로는 정부의 적대적 노조정책에 있다. 또한 전공노 합법화를 저지하는 구체적 이유로는 공공부문 민영화와 공공부문에서의 시간제 일자리 정책 추진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철도 민영화 등 공공부문 민영화를 추진하고,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시간제 공무원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주요한 반대세력인 전공노를 사전에 무력화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엿보이는 것이다.

영국 대처의 길이 단지 박근혜 대통령의 이미지 차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정책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전교조와 전공노 사태를 통해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과 정부는 대처리즘의 결말이 결코 영광의 길이 아니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최악의 민영화 사례로 꼽히는 영국 철도는 대처 퇴임 이후에 국민들의 요구로 다시 공영화되었고, 대처 재임 기간 중 실업률은 훨씬 악화되었다. 그 결과 영국은 현재 선진국 중 양극화가 가장 심한 나라 중 하나다. 성난 국민들로부터 “당신은 영국의 어머니가 아니라 괴물”이라는 치욕을 당한 것이 대처의 길이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정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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