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석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교수
지난 대선 때 국가정보원의 정치 댓글을 통한 여론 조작 사건은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큰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대선 결과에 대한 불복종 논쟁까지 벌어지는 등 그 여파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국정원 댓글이 선거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을까? 개인의 정치 행동을 설명하는 변수는 개인의 유전자 정보에서부터 사회적 변수까지 매우 다양하다. 2008년 <뉴욕타임스 매거진>은 ‘유전자 정치학’(genopolitics)을 다뤘다. 개인의 정치 성향이 유전자 요소에 의해 내재화되어 있다는 유전자 정치학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편향성의 유전자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이 도발적인 연구들은 누적된 자료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주장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 적어도 전통적인 정치 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 다뤄온 것처럼 개인의 의견 형성은 다양한 정치사회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온라인 댓글이나 에스엔에스(SNS) 메시지가 의견 형성에 끼치는 영향은 다양한 정치 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 확인되고 있다. 개인이 무엇이 중요한지를 판단하게 하는 의제 설정 효과나 사안을 특정한 틀로 해석하게 하는 틀짓기 이론 등이 대표적이다. 뿐만 아니라 의견의 분포를 보고 다수 의견에 편승하는 밴드웨건 효과나 자신이 소수 의견에 속해 있다고 믿을 때 침묵하는 침묵의 나선 효과 등은 오래된 이론들이다. 그렇다고 특정 메시지가 그대로 수용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정치 성향에 따라 제공되는 메시지를 편향되게 해석한다는 적대적 매체 지각 이론도 있다. 최근에는 온라인 댓글의 효과에 대한 연구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미국에서 얼마 전 발표된 실험 연구는 사람들이 댓글에 어떤 영향을 받는가를 조사했다. 뉴스를 수집해 보여주는 사이트에 올라온 10여만개 댓글을 실험 도구로 해 5개월여에 걸쳐 연구가 진행됐다. 피실험자들을 긍정적 내용의 댓글에만 노출된 집단, 부정적 내용의 댓글에만 노출된 집단, 그리고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은 집단으로 나누었다. 분석 결과, 긍정적 댓글에만 노출된 집단은 아무런 조작을 하지 않은 집단보다 25%나 더 그런 댓글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연구자들은 이 현상을 ‘긍정적 군중 행동’으로 정의하고 인터넷 댓글이 특정한 의견을 긍정적으로 지지하는 내용을 담았을 때 인터넷 이용자에게 밴드웨건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부정적 댓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이런 현상이 적게 나타났다. 특정 온라인 메시지의 효과의 크기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연구마다 천양지차다. 하지만 효과가 있다는 점에는 대다수 연구들이 동의한다. 국정원의 댓글 조작으로 대선 결과가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검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대선 불복 논쟁은 누구에게도 실익이 없는 허무한 정쟁에 불과하다. 그러나 국가기관이 조작된 여론을 만들었다는 것은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며, 나아가 국가의 신뢰를 저해한 심각한 문제다. 그렇기에 정부의 사과와 책임자에 대한 엄중 처벌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국가기관이 국민을 상대로 여론 조작을 못하게 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2009년에 3월 경찰청은 전국 주요 도로의 모형 교통 단속 카메라를 모두 없앤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교통사고 예방이라는 명분이 있었지만 국민을 속이고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반성에 따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비록 선한 의지를 표방하더라도 국가기관이 국민을 속이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과거 경찰의 발언을 되새길 때다.
황용석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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