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휴일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뜻밖의 풍경을 만났다. 사고 환자, 고열로 보채는 아기, 뼈가 부러진 아이 등으로 소란스럽기 마련인 대기실이 조용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진료 대기 중인 유아·아이들이 모두 손에 스마트폰을 쥔 채 통증을 잊고 있었다. 화면 속 뽀로로와 게임이 응급실 자지러지는 울음을 몰아냈다.
2000년대 미국에선 36개월 이하 유아 대상의 ‘교육용’ 디브이디(DVD) ‘베이비 아인슈타인’이 화제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2살 이하 유아의 부모 셋 중 하나꼴로 구매했고, ‘베이비 바흐’ ‘베이비 모차르트’ ‘베이비 뉴턴’으로 시리즈가 이어졌다. 하지만 2009년 공급사 디즈니는 구매자 전원에게 환불을 발표했다. 유아 발달에 도움이 되고 교육적이라는 광고가 기만이라는 시민단체의 비판에 굴복한 것이다.
유아의 비디오 시청은 부작용이 있을 뿐 교육적 효과가 없다는 미국 소아과학회(AAP)의 권고가 결정적이었다. 이 학회는 2011년 디지털 환경을 고려한 새 권고문을 발표하면서 부모가 아이를 돌볼 때 텔레비전을 켜놓는 간접시청도 해롭다고 경고했다. 2살 이전에 스크린에 노출될 경우 언어 발달이 저해된다는 연구도 소개했다. 젖먹이 때 뇌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데 눈을 맞추며 놀아주는 게 으뜸이라는 게 의학계의 중론이다. 발달의 결정적 시기에 뇌가 화면에 과다노출되면 균형있게 자라지 못하고 발달과 생존에 필요한 학습을 할 기회가 줄어든다.
요즘 아이들은 ‘디지털 원주민’으로 불린다. 어려서부터 디지털 기기와 스크린을 피하기 어려운 환경이 사회와 부모의 보육 환경 무지에 대한 면책 사유가 될 수 없다. 1960년대 미국과 유럽 구두가게엔 1920년대부터 보급된 페도스코프란 기계가 있었다. 아이에게 신발을 신겨본 뒤 발에 맞는지를 엑스선을 쏘이면서 부모와 점원이 눈으로 신발 속을 확인하는 기계였다. 방사능 피폭의 진실을 알기까지는 원자폭탄을 투하하고도 20년이 더 걸렸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