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미국 리스크, 북한 리스크 / 백기철

등록 2013-10-01 19:16

백기철 논설위원
백기철 논설위원
시리아 화학무기를 둘러싼 미국 태도를 놓고 설왕설래가 있었다. 반인륜적 대량파괴무기를 두고 그리 물렁해서는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하지만 시리아 사태의 줄기는 미국이 폭격 직전까지 갔다가 아사드 정권의 부분 항복을 받은 것이다. 미국은 여전히 무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매우 큰 세계 평화 위협 국가다.

한반도에서도 마찬가지다. 몇 차례의 북한 정밀타격론에서 보듯 미국은 한반도에서 대규모 무력을 사용할 가능성이 가장 큰 나라다. 북한의 화학무기와 핵무기를 들어 북한 위협론을 강조하지만, 미국의 첨단무기들에 비하면 이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어찌 보면 한반도에선 미국 리스크가 북한 리스크보다 더 크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최근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지낸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책을 읽고 북한 리스크가 의외로 클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고르바초프는 <선택>이란 회고록에서 소련 공산당 지도부의 암울하고도 우스꽝스런 행태를 잘 적어놓았다.

1979년 12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소식을 고르바초프는 그루지야의 겨울휴가지에서 접했다. 그는 “국가의 앞날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칠 중요한 결정을 명색이 정치국 후보위원인 나조차 언론보도를 통해 알았다”고 했다. 식량 문제를 총괄하는 농업 담당 서기였던 그조차 모를 정도로 소련 지도부는 폐쇄적이고 독단적이었다. 체르넨코 서기장 사망 직전에는 건재를 과시하기 위해 병실 옆방을 최고회의 투표소로 조작해 가짜 투표 영상을 찍는 촌극을 벌였다.

고르바초프가 폭로한 소련 지도부의 암울한 모습은 전대미문의 세습사회주의 실험을 하고 있는 북한을 떠올리게 한다. 김정은 제1비서의 일인통치와 이를 떠받치는 일당독재의 통치구조가 모르긴 몰라도 붕괴 직전의 소련 지도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아버지뻘로 보이는 노장군들이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김 비서의 교시를 받아적는 모습은 우스꽝스럽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대외정책은 무언가 중심이 잡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미국 프로농구 스타와 어울리는 김 비서나 젊고 눈부신 퍼스트레이디의 모습은 무언가 북한 현실과 부조화스럽다.

소련 지도부가 그랬듯 김 비서를 정점으로 하는 북한 지도부는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비합리적이고 우스꽝스러울지 모른다.

북한 체제의 스탈린주의적 속성을 직시한다면 북한 문제는 좀더 폭넓게 접근해야 한다. 남북 간의 평화공존, 군축, 자주적 통일국가 건설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전체주의 체제에서 신음하는 북한 인민들의 인권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북한 인권 문제는 진보든 보수든 시민사회가 나서는 게 좋다. 정부가 앞장서 이를 제기하는 것은 일종의 내정간섭이다.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정부 차원에선 북한과 평화공존을 추구하고 시민사회는 북한 인권 문제에 유념하는 게 바람직하다. 보수, 진보가 각각 한쪽만을 붙잡고 고집하는 것은 미성숙한 우리 사회의 한계다.

북한 리스크, 즉 북한 체제의 위험성은 민주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무력의 문제에서 비롯한다. 지도자와 몇몇 측근의 우발적 결정으로 심각한 상황이 올 수 있다. 미국 역시 군산복합체의 논리에 따라 끊임없이 무력을 사용하려 든다. 세계에서 미국과 가장 적대적인 국가를 이웃으로 두고 사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한반도는 북한과 미국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리스크를 가진 두 나라가 대치하는 화약고와 같다. 언제든 싸움터로 변할 수 있다. 그만큼 무력의 민주적 통제, 국제적 통제, 양자 또는 다자간 협약을 통한 항구적 평화 질서 구축이 더욱 절실하다.

백기철 논설위원 kcbae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배울만큼 배웠을 그들, 어쩌다 ‘윤석열 수호대’가 되었나 [1월7일 뉴스뷰리핑] 1.

배울만큼 배웠을 그들, 어쩌다 ‘윤석열 수호대’가 되었나 [1월7일 뉴스뷰리핑]

[사설] 최상목, 말로는 ‘국정 안정’, 행동은 ‘최대 리스크’ 방치 2.

[사설] 최상목, 말로는 ‘국정 안정’, 행동은 ‘최대 리스크’ 방치

한국 경제의 숙제, 윤석열 단죄 먼저 [한겨레 프리즘] 3.

한국 경제의 숙제, 윤석열 단죄 먼저 [한겨레 프리즘]

달려야 한다, 나이 들어 엉덩이 처지기 싫으면 [강석기의 과학풍경] 4.

달려야 한다, 나이 들어 엉덩이 처지기 싫으면 [강석기의 과학풍경]

최상목의 자기합리화…‘석열이형’에게 미안해서 [1월6일 뉴스뷰리핑] 5.

최상목의 자기합리화…‘석열이형’에게 미안해서 [1월6일 뉴스뷰리핑]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