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1950년에서 1954년 5년간은 미국 민주주의의 암흑기로 꼽힌다. 공화당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가 “미국에서 활동하는 공산주의자들의 명단을 가지고 있다”고 발언하면서 시작된 ‘공산주의자 사냥’, 즉 매카시즘의 시기 말이다. 매카시는 경력 위조, 금품 수수, 음주 추태 등으로 사면초가에 몰리자 입지 반전을 꾀했다. 증거 없이 무책임한 폭로를 계속했고 신문들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몇만명의 무고한 미국인이 공산주의자 혐의를 받고 고발당해 관청의 심문을 받았다. 공무원과 연예사업계 인사, 교육자, 노동조합 활동가가 우선적으로 의심받았다.
매카시 바람을 등에 업은 공화당은 1952년 민주당의 장기 집권을 저지하고 권력을 획득한다. 매카시 광풍은 전시 총동원 체제로부터 전후 체제로 옮겨가기 위한 보수강경 지배층의 이데올로기적 필요성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아울러 민주당이 공산주의자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매카시즘에 가세한 것이 전근대적 마녀사냥을 가능하도록 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우리나라 민주당이 엊그제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원외투쟁을 사실상 접었다. ‘추석 민심’ 등을 거론하지만, 국정원의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세몰이에 무릎 꿇은 결과로 볼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은 새누리당의 절반에 머물고 있다. 국정원과의 의제 경쟁에서 제1야당이 힘있게 행동하지 않은 데 따른 당연한 결과다. 야당과 일부 지식사회는 총론으로 ‘민주주의 후퇴’를 외치면서도 실제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지키는 데는 충실하지 못했다.
야당은 무엇보다 내란음모죄 적용의 부당성을 정면으로 주장해야 옳았다. 이 의원 쪽의 합정동 모임은 설령 녹취록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철 지난 병정놀이”이며 “거기에다 내란음모죄를 씌우는 (것은) 황당한 정치공작”(유시민 전 장관)이었다. 그들이 국가시설이나 인명에 실제 위해를 가한다면 처벌해야 마땅하다. 그게 아니라 골방에 모여 앉아 말을 주고받은 것뿐인데도 사법적으로 처벌한다면, 그것은 말과 글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미국 연방 수정헌법 1조는 언론활동의 자유는 어떤 법률로도 제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야당들은 국정원 수사의 정치적 의도성만을 지적하고, 내란음모 적용의 황당함과 부당성에는 입을 다물었다.
또 하나의 논점이 있다. 생각의 자유와 공론장의 관용 문제다. 정치인의 생각은 ‘공적 노선’ 성격이 있는 까닭에 좀더 명확하게 표현될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의원 쪽의 ‘생각’도 당연히 논쟁과 비평의 대상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이 사회의 지배적인 관점과 다른 소수 견해를 갖고 있고 그것을 공공연히 표현하기 어려워할 경우에, 그들에게 ‘실제 생각’을 고백하도록 강요하거나 공론장에서 떠나도록 압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야당 인사들이 마치 수사관이 사상을 검열하는 듯한 기세로 통합진보당에 종주먹을 들이댄다면 그것도 적당하지 않다.
통합진보당도 야당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 정체성을 의심받고 이리저리 둘러대기 바빴지 공당답게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한 까닭이다. 분단상황과 국가보안법의 제약으로 자유로운 토론이 어렵다면 그런 환경 제약의 문제점을 주장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매카시즘의 광풍은 미국에서 다섯 해 동안 민주주의를 실종시켰다. 문재인 의원이 신매카시즘이 계속되고 있음을 우려한 것처럼, 우리 민주주의도 몇 해째 종북 여론몰이에 짓눌려 있다. 이석기 사태에 대한 야당의 담론을 되살펴보는 까닭은 바로 이것이다.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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