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정치가인 관중이 쓴 <관자> 목민편에는 ‘곳간이 차야 예절을 알고, 먹고 입을 것이 넉넉해야 명예와 수치를 안다’는 말이 나온다. 생활 형편이 넉넉해야 예절도 갖추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도 이제 남의 눈치도 좀 보고 예절을 차릴 정도로는 먹고살게 됐다. 그런데도 아직 과거 배고픈 시절의 낙후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도 많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길거리 예절의 경우 특히 그렇다. 백화점 출입문 같은 곳을 드나들 때면 앞사람이 놓아버린 문을 받아내느라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분명 앞사람도 그 앞사람이 놓은 문을 받느라 당황했을 수도 있는데 똑같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놓는다. 뒷사람을 위해 문고리를 잡아주는 이는 열 명 가운데 한둘에 불과하다. 사소하다면 사소하지만 배려가 부족한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우측통행이 시행된 지 3년이 넘었지만 한강시민공원에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왼쪽으로 걸으며 오른쪽으로 걷는 이에게 돌진하다시피 다가서는 이들이 많다. 도로 진입로에서 남들은 다 줄을 서는데 혼자만 먼저 가겠다고 맨 앞으로 끼어드는 차량도 꼴불견이다. 식당에서 제집 안방처럼 큰소리로 대화하는 비매너도 아직은 남아 있다.
프랑스어의 ‘붙이다’는 뜻의 동사에서 유래한 에티켓은 ‘나무 말뚝에 붙인 표지’의 뜻이 되고 나중에 궁중의 각종 예법을 가리키는 말로 변했다. 왕이나 귀족, 부르주아 모두 자신들을 다른 계층과 구별 짓기 위해 에티켓을 만들었다. 한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길거리 예절이 아름다운 사회는 그렇지 못한 사회와 분명 다르다. 과거에는 그리 신경 쓰지 않았던 에티켓도 국제화 시대에는 글로벌 스탠더드로 존중하는 게 좋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랠프 월도 에머슨은 ‘인간의 에티켓은 초기 그리스 예술작품이나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들처럼 단순하지만 놀랍도록 내면의 빛을 발한다’고 말했다. 길거리 예절은 한 사람, 한 사회의 영혼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백기철 논설위원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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