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문고리 잡아 주기 / 백기철

등록 2013-09-25 18:47수정 2013-09-26 17:43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정치가인 관중이 쓴 <관자> 목민편에는 ‘곳간이 차야 예절을 알고, 먹고 입을 것이 넉넉해야 명예와 수치를 안다’는 말이 나온다. 생활 형편이 넉넉해야 예절도 갖추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도 이제 남의 눈치도 좀 보고 예절을 차릴 정도로는 먹고살게 됐다. 그런데도 아직 과거 배고픈 시절의 낙후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도 많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길거리 예절의 경우 특히 그렇다. 백화점 출입문 같은 곳을 드나들 때면 앞사람이 놓아버린 문을 받아내느라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분명 앞사람도 그 앞사람이 놓은 문을 받느라 당황했을 수도 있는데 똑같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놓는다. 뒷사람을 위해 문고리를 잡아주는 이는 열 명 가운데 한둘에 불과하다. 사소하다면 사소하지만 배려가 부족한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우측통행이 시행된 지 3년이 넘었지만 한강시민공원에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왼쪽으로 걸으며 오른쪽으로 걷는 이에게 돌진하다시피 다가서는 이들이 많다. 도로 진입로에서 남들은 다 줄을 서는데 혼자만 먼저 가겠다고 맨 앞으로 끼어드는 차량도 꼴불견이다. 식당에서 제집 안방처럼 큰소리로 대화하는 비매너도 아직은 남아 있다.

프랑스어의 ‘붙이다’는 뜻의 동사에서 유래한 에티켓은 ‘나무 말뚝에 붙인 표지’의 뜻이 되고 나중에 궁중의 각종 예법을 가리키는 말로 변했다. 왕이나 귀족, 부르주아 모두 자신들을 다른 계층과 구별 짓기 위해 에티켓을 만들었다. 한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길거리 예절이 아름다운 사회는 그렇지 못한 사회와 분명 다르다. 과거에는 그리 신경 쓰지 않았던 에티켓도 국제화 시대에는 글로벌 스탠더드로 존중하는 게 좋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랠프 월도 에머슨은 ‘인간의 에티켓은 초기 그리스 예술작품이나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들처럼 단순하지만 놀랍도록 내면의 빛을 발한다’고 말했다. 길거리 예절은 한 사람, 한 사회의 영혼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백기철 논설위원 kcbae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이미 예견됐던 ‘채식주의자’ 폐기 [한겨레 프리즘] 1.

이미 예견됐던 ‘채식주의자’ 폐기 [한겨레 프리즘]

다시 전쟁이 나면, 두 번째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연철 칼럼] 2.

다시 전쟁이 나면, 두 번째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연철 칼럼]

언제쯤 노벨 과학상을? [똑똑! 한국사회] 3.

언제쯤 노벨 과학상을? [똑똑! 한국사회]

노벨경제학상 관점서 본 ‘의사파업’ [한겨레 프리즘] 4.

노벨경제학상 관점서 본 ‘의사파업’ [한겨레 프리즘]

국민의힘 중진들이 옳다 [성한용 칼럼] 5.

국민의힘 중진들이 옳다 [성한용 칼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