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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전세의 종말? / 김영배

등록 2013-09-15 19:29

김영배 경제부장
김영배 경제부장
전세난에 휘말려 떠밀리다시피 집을 사 이사한 지 한달쯤 됐다.

2년 전 국외 연수를 마치고 귀국할 때 혹독한 전세난을 겪은 터여서 전세계약 만기에 이르는 올해도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실상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전세 물건이 ‘씨가 마른’ 상황에서 선택지는 매우 좁았다. 월세는 여전히 너무 비싼 수준이라 버거워 보였다. 중고생인 아이들 전학을 시켜야 하는 부담 탓에 다른 동네로 이사하는 선택도 여의치 않았다. 생애 첫 주택 대출 대상에 포함돼 금리 부담을 다소 던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집을 살 때 대출 관련 서류로 필요해 떼어 본 주민등록초본에는 그동안의 주거지 기록이 나와 있었다. 결혼 20돌을 한 해 앞둔 올해의 이사가 11번째였다. 숱하게 많이 이사를 다니는 동안 겪었던 전세난 중에서도 올해는 특히 유별났다. 전셋값이 치솟는 수준을 넘어 월세로 급격히 전환되면서 임대시장 구조에 질적인 변화가 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전세제도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라고 한다. 부동산 전문가인 김수현 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교수가 쓴 <부동산은 끝났다>는 책에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이 제도의 배경에 대한 실마리가 담겨 있다. ‘해방 이후 제도금융을 이용하기 힘든 상황에서 내집 마련을 위해 집의 일부를 세놓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한 게 전세다. 1950~60년대에는 거의 모든 주택이 단독주택이었으므로 사랑방이나 문간방을 세놓아 부족한 자금을 보충하는 것이 가능했다. 대도시로 급격히 인구가 몰려드는 상황에서 집은 만성적으로 부족했고, 따라서 부분전세를 통해 집을 나눠 쓰는 게 관행으로 굳어졌다.’

제도금융이 발달하고 부분임대가 사실상 불가능한 아파트가 주택의 대종을 이루는 지금까지 전세제도가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의 근거는 장기적인 추세로 이어져온 집값의 상승 흐름이다. 급격한 집값 상승세 속에서는 전세를 끼고서라도 집을 미리 사두는 게 전세금이라는 ‘기회비용’을 지불하고라도 이익을 남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세금이 계속 치솟는 까닭 또한 이런 논리로 설명된다. 집값 상승을 기대하고 남의 돈(전세금)을 빌려 주택을 미리 구입했는데, 집값이 오르지 않으니 전세금을 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나아가 집값이 계속 오르지 않을 게 확실하다면 아예 월세로 돌려 이득을 얻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불패 신화’가 전세제도를 고착시켰고, 이 신화의 붕괴 조짐이 전세대란을 일으키고 있는 게 맞다면, 전셋값 급등이 어떤 측면에선 집값 안정이라는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일부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전세에서 월세로 급격히 전환되는 과도기에 세입자, 특히 1억~2억원 정도로 연립주택이나 소형 아파트에 거주하는 가구들이 겪는 고통이다. 보증금 3억원 안팎의 세입자의 경우 상황에 따라선 주택을 구입할 수 있어 선택의 폭이 넓은 편이지만, 저가 보증금의 세입자에게는 월세로 내려앉는 것 외에는 별다른 출구가 없어 보인다. 비싼 지역의 전세금을 안정시키는 것보다 싼 지역의 월세 전환에서 빚어지는 문제에 대한 대처가 핵심인 셈이다.

집을 구해 이사를 한 뒤 아내에게 부탁을 한마디 했다. 앞으로 한 5년 동안 집값,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말고 잊어버리라고. 큰 흐름으로 보아 아마 값이 오를 일은 별로 없을 것이란 말과 함께. 만일 집값이 계속 오른다면, 10여년 뒤쯤 결혼 적령기에 이르는 우리집 두 아이의 고통이 커질 것이고 그 고통이 물적·심적으로 우리에게 떠넘겨져 오른 집값을 결국 상쇄하고 말 것이란 한마디를 더 보태고 싶다.

김영배 경제부장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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