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산업화된 나라 중 하나인 스위스의 대학 진학률은 선진국 중에서 가장 낮다. 1996년까지 1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34%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2009년 스위스의 대학 진학률은 29%였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대학 진학률이 낮으면서도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을 스위스 패러독스라 불렀다.
이와 정반대인 우리나라의 현실은 코리안 패러독스로 명명됐다. 대학 진학률이 한때 80% 가까이 치솟고서도 젊은이들이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데 참여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실정을 빗댄 것이다.(<따뜻한 경쟁>, 맹찬형, 서해문집)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할 뿐 아니라 국내 산업 수요에도 부합하지 못하는 학위를 따기 위해 부모와 학생이 죽을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스위스 패러독스의 비밀은 경쟁의 경로를 분산하는 데 있다. 대학 진입의 문을 높이는 대신 비대학 출신자가 진출할 수 있는 영역을 넓히고 대졸자와의 임금 격차를 없애는 것이다. 스위스의 공교육은 초등학교 때부터 꼼꼼하기로 유명하다. 학교에서는 위원회를 구성해 각종 성적표와 풍부한 자료를 토대로 진학지도를 한다. 대학은 등록금 부담이 거의 없고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아무나 대학에 보내지 않는 것이다. 이런 데서 사교육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최근 우리나라도 대학 진학률이 떨어지고 있다. 교육부가 얼마 전 공개한 올해 대학 진학률은 70.7%였다. 2009년 77.8%로 정점을 찍은 뒤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 고교생 취업률은 증가세인데, 2011년에 23.3%에서 올해는 30.2%까지 올랐다.
추세가 나아지고는 있지만 코리안 패러독스의 구조는 여전하다. 무엇보다 대졸자와 비대졸자, 4년제와 2년제 졸업자 사이의 격차를 줄여 노동시장을 개선하는 게 급선무다. 공교육을 혁신해 선행학습 등 사교육의 폐해를 줄이는 것도 시급하다.
백기철 논설위원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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