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무 스포츠부 선임기자
스포츠 지도자에게 가장 우선시되는 요소는 무엇일까? 뛰어난 용병술? 선수 발굴 능력? 아니면 선수들과의 소통? 감독은 보통 덕장이나 맹장, 두 부류라 할 수 있다. 물론 둘 다 겸비한 사람도 더러 있다. 축구의 경우 경기력에서 지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70% 이상이라는 말도 있다.
요즘 가장 주목을 받는 국내 사령탑은 아무래도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아닌가 싶다. 자신만의 독특한 리더십과 스타일, 화법으로 다시 화제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감독 홍명보’를 인터뷰한 적이 두어 번 있다. 그때마다 ‘이 사람 참 무뚝뚝하다’, ‘친해지기 어려운 사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말투부터 친화적이지 않다. 기자들 전화를 잘 받아줘 언론 친화적이라는 소리를 듣던 조광래 전 대표팀 감독과는 사뭇 다르다. 농담을 할 줄도 모른다. 몇년 전 사석에서 딱 한번 소주잔을 같이 기울인 적도 있는데, 할 말은 하고 매사에 냉정하며 말을 아낀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표정 뒤에 숨어 있는 따뜻한 가슴’. 홍 감독이 쓴 <영원한 리베로>라는 책을 보면, 한 팬이 그를 이렇게 평가한 대목이 나온다. “첫인상이 차갑고 무서워서 턱이 아플 만큼 긴장했던 기억뿐이다… 하지만 너무 따뜻한 사람이었다.” 국가대표 시절 박지성과의 일화도 있다. 처음 국가대표에 뽑힌 박지성과 한방을 쓰게 됐는데, 둘 다 말이 없는 성격이라 박지성은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박지성은 띠동갑이다. 나와 한방을 써야 했으니 얼마나 불편했을까? 지성이가 불편해할까 봐 잠을 잘 때까지 웬만하면 방에 들어가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홍 감독이 나중에 회고한 당시 상황이다.
지금 <‘홍’비어천가>를 쓰려는 게 아니다. 감독 취임 후 2개월10일 남짓한 그의 행보를 보면 새로운 인간적인 면모와 지도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어느 조직이나 단체에서도 리더라면 한번 곱씹어볼 대목들이 있지 않나 싶다. 그는 선수들에게 ‘예의와 품격’을 강조한다. 대표팀 소집 때 단정한 양복 차림으로 입소하도록 한 것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냉정하고 편견이 없는 지도자이기도 한 것 같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자신의 전임자를 비방한 기성용 선수에 대해선 “바깥세상과의 소통보다는 지금 부족한 본인 내면의 세계 공간을 넓혀 갔으면 한다”고 돌직구를 날렸다. ‘애제자’ 박주영의 소속팀에서의 부진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경기에 나가야만 선수의 가치를 알릴 수 있다. 대표팀에 합류하려면 새로운 팀을 찾는 게 급선무”라고 지극히 냉정함을 보였다.
이른바 국내파와 해외파 구별도 꺼린다. 그런 용어를 쓰는 것 자체에 비판적이며, 언론에 좋은 단어를 찾아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을 법한 유럽파들에게 계속 경고의 메시지도 던지고 있다. 다른 조직으로 치면, 학벌이나 해외유학 등 ‘스펙’보다는 현재의 능력을 중요시하겠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그러면서도 선수들에 대한 배려는 대단하다. “외국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이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코칭스태프의 역할이다”, “K리그 선수들,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는다”…. 노장을 기피하지도 않는다. “노장이든 뭐든 좋은 경기력 보이면 기회를 줄 것이다.”
40대 중반인 홍 감독은 경기적 측면에선 아직 배워야 할 게 많다. 성인대표팀 감독으로서 고작 네 경기를 치렀을 뿐이다. 선진 축구도 더 경험해야 하고, 강팀을 만나 더 부서지면서 소중한 경험과 교훈도 얻어내야 한다. 그는 내일 저녁 8시 인천축구전용구장에서 아이티를 상대로 A매치 첫 승에 도전한다. 그러나 승패에 따라 당장 일희일비할 문제는 아니다. 한국 축구의 소중한 자산인 그에겐 아직도 시간이 필요하다.
김경무 스포츠부 선임기자kkm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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