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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집을 안 사? 못 사! / 김회승

등록 2013-09-03 18:43수정 2013-09-03 20:56

김회승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김회승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기자: 갖고 있는 아파트 어떻게 했어?

=선수: 큰 거는 정리했고, 요즘은 수도권 중소형 위주로 사. 지금 상황이 1990년대 말하고 비슷해. 그때도 집값하고 전셋값이 1000만원밖에 차이 안 나는데 사람들이 집 안 샀지. 그런데 2001년부터 죽 올랐지. 물론 그때는 인구도 늘고 성장하던 때라서 지금하고 상황이 조금 다르지. 그러니까 대형은 안 돼도 중소형은 돼.

-기자: 정부 대책 어떻게 봐?

=선수: 좋~지. 취득세 감면받아서 사려고 대기중이야. 중소형은 올 연말까지 선수들이 다 사들일 거야. 전세 사는 사람들 지금 집 안 사. 내년 말쯤 집값이 오른다는 공감대가 생기면 그때부터 살 거야. 임대주택 늘리는 거? 정부가 돈이 어딨어.

정부가 전월세 대책을 내놓은 지난달 28일, 경제부 현장 기자가 보내온 취재 메모다. 아파트 수십채를 굴리는 이른바 ‘선수’와의 문답인데, 수십년 부동산 투자로 얻은 경험칙과 노하우를 엿볼 수 있다. 그의 예측과 발 빠른 행보가 맞든 틀리든, 정부 대책을 바라보는 다른 선수들의 시각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 ‘전월세 시장 안정’이란 이름을 붙였지만, 부동산 선수들은 ‘본격적인 집값 떠받치기’로 읽고 있다는 증거다. 주택 거래 활성화를 위해 다주택자의 출구를 터줘야 한다고 하는데, 이들은 이미 수익성 좋은 물건을 선점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번 대책은 주택 구매력이 있는 세입자한테 ‘세금·융자 혜택 더 줄 테니 집을 사라’는 메시지로 요약할 수 있다. 집값이 떨어지면 정부가 손실을 분담하는 대출상품까지 내놨으니, 실수요자라면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다. 시장에서는 벌써 조짐이 엿보인다. 새도시와 서울의 중소형 아파트는 지난 4~5월부터 가격 하락이 멈췄고 매물도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까지 부동산 시장은 그래 왔다. 집값이 오르는 초기 단계엔 늘 투기 수요가 먼저 움직이며 매물을 흡수하고 실수요자들이 뒤늦게 엄벙덤벙 뛰어드는 패턴이 반복됐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 부동산값은 외환위기 이후 10여년 동안 집중적으로 치솟았다. 김대중 정부는 토지거래 허가제 등 부동산 규제를 왕창 풀었고, 노무현 정부는 지방분권 정책으로 전국 집값을 들쑤셔놨다.

정부는 주택 거래가 활성화돼야 전세난이 해결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세계에서 유일하다는 우리의 전세 제도는, 기본적으로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집주인이 수지타산을 맞추기 힘든 구조다. 집값과 전셋값 차이만큼의 금융비용에 재산세·수리비 등 보유비용을 다 부담하고도 남는 장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맷값이 안정되면 전셋값을 끌어올리고, 상향조정된 전셋값이 다시 매맷값을 유지해주는 사이클이 반복돼왔다.

그러나 정부의 진단처럼, 당장 집을 살 여력이 있는데 망설이는 실수요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오히려 집값이 너무 올라 집을 살 여력이 없는 이들이 훨씬 많은 게 현실 아닌가. 가구소득 대비 주택가격 지표(PIR)가 있다. 서울의 경우 소득 3분위 기준으로 12배다. 한 가정이 연간 소득을 다 모아도 집 사는 데 12년이 걸린다는 얘기다. 국제적으로 적정 수준은 3~5배 정도다. 중간소득 가구가 이 정도니, 그 이하는 사실상 평생 집을 살 수 없다고 봐야 한다.

집값 하락은 고통스러운 부채조정을 동반한다. 그나마 다행히 집값은 지난 몇 년간 하향 연착륙하고 있다. 가계부채 1000조원 시대에 집값을 떠받치겠다는 발상은 근시안적이고 위험하다. 무주택자와 세입자, 그리고 미래 세대의 주거 부담은 고착화되고, 글로벌 유동성이 축소돼 금리가 오르면 거품이 일거에 터질 수도 있다. 폭탄 돌리기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

김회승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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