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백자 가운데 ‘달항아리’가 있다. 생김새가 둥글둥글하고 넉넉한데다 살결이 희고 깨끗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보기만 해도 정겹고 그 속에 무엇을 담아도 소중할 것 같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다양한 항아리가 인류 문명과 함께해왔다.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 여러 ‘항아리론’이 곳곳에서 전승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첫째는 평등이다. 사람은 누구나 빈 항아리를 하나씩 갖고 태어난다. 모양과 색깔, 재질과 크기는 차이가 날 수 있지만 근본적인 가치는 다를 바가 없다. 그 항아리를 잘 관리하고 내용물을 채워나가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둘째는 성취의 구조와 관련돼 있다. 큰 항아리에 물을 채운다고 하자. 처음에는 힘들게 노력하는데도 물이 계속 밑바닥에만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물 채우기가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아 그 자체가 편안하고 재미있게 될 때쯤이면 물이 부쩍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물이 항아리 입구 부근에서 찰랑찰랑한다. 성취의 순간이다. 이 이후로는 물을 조금씩만 부어 넣어도 눈에 띄게 성과가 나타난다. 물론 항아리에 구멍이 나거나 한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물이 차지 않을 것이다.
셋째는 삶의 태도에 관한 것이다. 항아리를 채우는 게 중요하긴 하지만 그 자체에만 매달려서는 한계가 있다. 항아리를 비울 줄도 알아야 한다. 채우려고만 하는 인생은 안으로부터 무너지기 쉽다. 고려의 문장가인 이규보는 술항아리를 예찬하는 <도앵부>에서 ‘소인들은 재물에만 맘이 끌려 두(열 되)·초(두 되)가 작은 줄을 모르고 끝없이 욕심을 낸다. 작은 그릇은 쉽게 차서 금방 엎어진다. 나는 늘 질항아리를 옆에 두고 차고 넘침을 경계하고 스스로 힘쓴다’고 했다. 분수를 헤아리며 노력하면 평범해 보이는 항아리로도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얘기다.
경제가 잘 안 풀리고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찾기도 쉽지 않은 때다. 그럴수록 자신의 항아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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