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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인쇄된 진술거부권 / 김이택

등록 2013-08-26 19:11

미국 수정헌법 5조는 ‘누구든지 어떤 형사사건에서도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강요당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1791년 만들어진 이 조항은 1966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이른바 ‘미란다 원칙’을 확립한 것을 계기로 생명력을 갖게 됐다.

연방대법원은 “피의자가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을 헌법상 기본권을 행사할 기회를 제공하려면 피의자에게 그런 권리가 있음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권리 행사를 전적으로 존중해야 한다”면서 단순히 조서에 피의자가 법적 권리를 알고 있었다고 적은 것만으론 진술거부권을 포기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우리 헌법도 12조 2항에서 ‘모든 국민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진술거부권을 명시하고 있다. 이 원칙은 2007년 6월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한 단계 발전해,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피의자 신문 전에 피의자에게 네 가지를 ‘알려줘야 한다’(244조의 3)고 의무화했다. 진술을 하지 않을 수 있고, 그래도 불이익을 받지 않으며, 진술거부권을 포기하고 한 진술은 법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고, 변호인 조력을 받을 수 있다는 등 고지사항을 상세히 적어놓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는 지난 22일 국가보안법상 간첩 등 혐의로 기소된 화교 출신 탈북자 유아무개씨 재판에서 간첩 혐의에 무죄를 선고하면서, 검찰과 국정원이 유력 증거로 내세운 유씨 여동생의 ‘진술서’ 등이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은 채 작성돼 증거로 쓸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앞머리에 ‘진술거부권 및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고지하였다’고 타이핑된 국정원 작성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은 문제 삼지 않았다.

우리 수사기관들은 피의자 신문조서나 진술조서 앞머리에 진술거부권 고지 사실을 미리 인쇄해놓고 피의자가 이 서류를 읽어봤다고 서명하는 것으로 거부권 고지를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구두로 알려주는 것과 인쇄된 걸 스스로 읽어보는 건 차이가 크다. 잘못된 관행은 바로잡아야 한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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