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2001~2009년에 미국 대통령을 지낸 조지 부시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곤 한다. 부시는 2000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에게 유권자 기준으로 54만표를 뒤지고도 선거인단 수에서 미세하게 앞서 당선되었다. 만약 민주당이 우세한 플로리다 팜비치 지역의 1만9천표가 무효 처리되지 않거나 재검표되었다면 승부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그럭저럭 정권을 유지하던 부시는 9·11 테러 뒤 갑자기 90%대로 지지율이 치솟았다. 공화당은 의회 상하원을 모두 수중에 넣었다. 여론을 등에 업었고 야당의 견제도 미약한 상태에서 부시는 권력의 절정을 즐겼다. 그러나 이라크 침공과 관련된 거짓말이 드러나고 전쟁이 끝없이 장기화하면서 그는 위기를 맞는다. 부시는 2008년 이라크를 방문해 기자회견을 하다가 한 이라크 언론인한테 “개놈아!” 소리를 듣고 그가 집어던진 신발에 얻어맞을 뻔했다. 허리케인 대처 무능, 측근들의 추문까지 겹쳐 퇴임 때 지지율은 30%로 곤두박질쳤다. 오바마의 승리는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라, 미국 보수주의의 상승 물결에 찬물을 끼얹은 사건이었다.
부시의 실패는 선과 악, 적과 동지로 모든 세력을 구분하는 단순한 이분법에 터잡은 까닭이 클 것이다. 이분법은 독선과 오만, 그리고 공존과 협상보다는 상대방을 힘으로 밀어붙이는 일방주의로 치닫기 쉽다. 일방주의는 지지자를 감성적으로 자극하는 정치적 효과가 있다. 정치인으로선 의존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하지만 감성적 동원 효과가 얼마나 지속되겠는가. 국정 운영이 정책적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결국은 실망을 부를 수밖에 없음을 부시의 사례는 말해준다.
개성공단 문제가 꼬여 있다. 평화의 보루로서 그 의미가 큰 데 비춰, 참으로 안타깝다. 남북 양쪽이 원인을 제공하는 것과 함께, 청와대의 대북 원칙론이란 게 해결의 걸림돌이라고 한다. 가령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론은 “(개성공단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칙이 통하도록 해결해야 한다”는 언어구조를 갖고 있다. 원칙이란 어휘 앞에 ‘국제사회의 기준’과 같은 수식어를 붙이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원칙의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기보다는 백지상태로 그냥 원칙 자체를 강하게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청와대의 대북 원칙론은 공존과 협상을 배제하고 힘으로 밀어붙여 협상 상대방을 길들이고 보자는 내포가 강하다. 부시의 일방주의와 매우 비슷하다. 원칙론은 남용할 때 민주적 의사소통에 해를 끼치기도 한다. 자신은 원칙론자이고,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은 무원칙한 타협주의자로 몰아붙여 버리는 이분법으로 흐르기 쉬운 까닭이다.
이 원칙론은 나름의 여론몰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후퇴하고 안보 위협이 되레 늘었다. 개성공단에 투자한 중소기업인들은 절망감을 터뜨리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의 ‘원칙을 지키는 의연한 대북정책’을 지지한다는 여론이 우세하게 잡힌다. 박근혜 정부가 정책을 잘해서가 아니라, 이분법적 언어를 구사해 대중의 감성을 사로잡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 정책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일방주의는 일시적으로 상대방의 무릎을 꿇릴지 몰라도 뒷날 막대한 비용을 초래했다. 이라크가 당장 그렇지 않은가. 프랑스는 베르사유 조약에서 1차 대전 패전국 독일을 가혹하게 몰아붙였다가, 독일의 재무장과 2차 대전 발발의 한 원인을 제공했다.
마침 오늘 남북한 당국자가 개성공단 협상을 한다. 양쪽 모두 협상장에 마주앉기에 앞서 기왕의 자세를 성찰했으면 한다.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cspcsp@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