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경제 민주화에 대한 종언’을 고했다. 새 정부 출범 꼭 반년만이다. 솔직히 에둘거나 뜸들이지 않는 게 더 낫다는 생각도 든다. 한 정부 관료의 해석은 들어보자. “(경제 민주화는) 박 대통령이 정리한 걸로 마무리 된 거지. 우리 경제 패러다임을 기업에서 개인으로, 성장에서 고용 중심으로 바꿔야 하는 건데, 이건 베팅을 해야 하는 문제야. 어떤 지도자도 이에 대한 확신이 없어.”
경제 민주화에 대한 대통령의 신념이 흔들린건지, 아니면 애초에 없었던 건지는 알 도리가 없다. 분명한 건, 우리 경제 전략은 또다시 ‘파이론’과 ‘낙수론’으로 회귀할 것이란 사실이다. 때를 기다렸다는 듯 관료들과 재계, 주류 언론과 학자들은 지원 사격에 여념이 없다. “지금 우리 경제의 유일한 버팀목은 수출이다” “대기업들이 90조원을 들고도 투자를 안 한다. 규제를 풀어야 한다” 경제 활성화냐 경제 민주화냐는 억지 이분법으로 겁박하는 이들도 많다. ‘저성장이 고착화 돼 일본식 장기불황으로 갈 수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제일 고통받는 게 서민이다’라는 식이다.
차라리 솔직한 고백이 낫지 싶다. “경제 민주화는 정치의 문제다. 선거 때는 표가 되지만 평상시에 표가 되는 건 경제 실적이다. 경제 민주화가 사람들한테 심리적 쾌감은 주겠지만, 그 결과로 경제 실적이 까이면 그때는 그냥 (정권이) 훅 가는 거다.”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이 최근에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다시 한번 냉정하게 복기해보자. 경제 민주화, 수십년간의 불균형 압축 성장이 낳은 폐해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장과 분배가 모두 불균형한 경제가 빚어낸 사회 곳곳의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지 않으면 더는 미래가 없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닌 새로운 경제발전 전략으로 제시된 것이다.
다시 한번 몇 가지 수치를 보자. 1980년대 기업소득과 가계소득의 평균 증가율은 각각 21%, 17%였다. 말 그대로 기업과 가계가 고성장 동반성장을 하던 시절이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가계소득 증가율(5.9%)이 기업소득 대비 절반(10.5%)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기업들이 임금을 올리지 않는 탐욕 때문이 아니다. 고용 유발이 적은 수출·제조업 중심에 지속적인 인력 절감형 투자가 이어지면서, 갈수록 기업의 과실이 가계로 유입되는 통로가 좁아지는 구조적인 문제인 것이다.
경제 민주화는 목표가 아닌 전략이다. 수출 대기업 중심의 불균형 성장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건, 정권의 이해관계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해답도 얼추 나와 있다. 경제 발전의 패러다임을 수출에서 내수로,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우리 같은 대외 의존적 경제 구조에서는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다. 세계 경제가 회복하면 그만큼 성장하고 나빠지면 우리도 그만큼 나빠지는 큰 틀을 벗어나기 힘들다.
이런 점에서 경제 민주화 포기 선언과 거의 동시에 ‘경제 성장률 3%’ ‘고용률 70%’ 같은 수치 목표가 부쩍 강조되는 건 아쉽고 답답한 노릇이다. 이명박 정부의 허황된 ‘7·4·7 공약’보다는 조금 나을지 모르나, 낡은 패러다임에 기대어 그럴싸한 경제 성적표를 얻고 싶다는 생각이라면, 버리는 게 좋겠다. 일개 기업가도 10년·20년 먹거리를 찾는 마당에 한 나라의 지도자가 임기 중 성과에 연연한다면 너무 서글픈 일이다. 휴가지에서 과거의 추억을 그리워할 게 아니라, 국민 행복을 위한 경제 패러다임과 비전을 고민했으면 좋겠다. 잘 나가는 기업가를 업어 주기 전에, 대선 때 자주 찾던 시장통 아주머니의 등을 두드려주면 좋지 않을까 싶다.
김회승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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