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여전히 언론은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언론에서 간헐적 단식을 집중보도하면, 이는 곧 유행이 된다. 자살도 마찬가지다. 유명인의 자살을 언론이 보도하는 방식은 ‘모방자살’에 큰 영향을 끼친다.
통계청의 2011 사망원인 통계를 보면 암, 뇌혈관 질환, 심장질환 다음으로 고의적 자해(자살)가 4위이다. 10대·20대·30대에서는 자살이 사망원인 1위, 40대와 50대에서는 2위이다. 자살에 대한 293개 자료를 분석한 미국의 스택 교수에 따르면 언론이 모방자살에 끼치는 영향은 놀랄 만큼 크다. 유명인사의 자살에 대한 보도는 일반인 자살 보도보다 14배, 영화와 소설 같은 ‘픽션’보다 언론에서 다루는 자살 사건은 4배 이상, 특히 신문은 텔레비전보다 상세 보도가 가능해 모방자살에 더 큰 영향을 준다.
이러한 이유로 세계보건기구(WHO)는 언론의 자살 보도에 대한 권고안을 2000년에, 한국자살예방협회는 2004년에 내놓았다. 몇 가지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 첫째, 자살 방법에 대해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안재환 자살 이후 차량 안에서 번개탄을 이용해 자살하는 시도가, 최진실의 자살 이후에는 목을 매는 자살이 급증했다. 김종학 피디의 자살 보도에 있어 굳이 “청색 테이프”를 어떻게 활용했는지까지 보도할 필요가 있었을까? 중앙자살예방센터로부터 무작위로 선택된 자살 관련 뉴스 186건을 받아 분석해본 결과 모두 80건(43%)이 ‘자살 방법과 장소의 자세한 묘사’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자살 현장 사진은 되도록 내보내지 않아야 한다. 한 방송사가 손호영이 자살 시도한 현장의 폐회로텔레비전(CCTV)까지 방송에 내보내고, 또 다리 위 ‘자살 퍼포먼스’를 촬영한 경우가 있었다. 이는 사실 보도라는 언론의 역할을 고려하더라도 부작용을 고려했을 때 비난받아 마땅하다.
셋째, 자살 이유를 단순화시키지 않아야 한다. 자살은 결코 한 가지 이유로 성립하지 않으며, 자살자의 90% 이상이 사망 당시 중대한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적 비관 자살’이란 자극적인 헤드라인 앞에서 성적으로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받게 될 충격을 고려해주기 바란다.
이러한 가이드라인에 대해 현장에서 취재하고 있는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자살 사건이 벌어지면 ‘데스크’에서는 최대한 구체적인 사실을 현장 기자에게 요구하고, 시간에 쫓기다 보면 이러한 가이드라인을 지키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오는 9월에는 ‘2013 자살보도 가이드라인 제정 포럼’이 열린다. 언론사 데스크에서 자신들의 보도가 한 사람의 삶에 치명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자살 사건 보도와 별개로 자살이 가져오는 불행과 이를 피할 수 있는 대안 제시 등에 대한 기획 기사 등을 만들어주길 바란다. 2013년 중앙자살예방센터와 한국기자협회가 공동 주최한 자살예방 우수 보도상을 수상한 <헤럴드경제>의 기획 ‘자살, 새로운 고통의 시작’ 시리즈, 투신자 수 1위인 마포대교에 삼성생명이 만든 ‘생명의 다리’ 캠페인과 같은 시도를 언론에서도 다양하게 펼쳐주길 바란다.
2001년 사망 원인 6위였던 교통사고는 10년 만에 9위로 내려섰다.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언론의 각종 캠페인이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2001년 사망 원인 8위였던 자살은 2011년 4위로 올라섰다. 언론이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이다. 물론 자살 예방 마음이음 상담전화(1577-0199), 보건복지부 희망의 전화(129) 번호를 최대한 노출시켜주는 것도 그러한 기여의 한 가지 방법이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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