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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엔엘엘과 두 정당의 ‘적대적 공생’ / 백기철

등록 2013-07-25 19:08수정 2013-07-26 10:07

백기철 논설위원
백기철 논설위원
북방한계선(엔엘엘) 정국이 종착점을 향해 가고 있다. 아직 전투들이 남았지만 큰 전투는 얼추 끝났다. 최근의 엔엘엘 정국은 대선 때의 1차 엔엘엘 전투와 여러모로 닮았다. 두 거대 정당이 과거 문제로 일합을 겨뤘는데, 안보 이슈인 탓에 애당초 야당이 불리했다. 실제 결과도 그리 나왔다. 두 당 싸움 와중에 안철수를 비롯한 제3세력의 입지는 좁아졌다. 민생은 뒷전인 채 나라가 두 패로 갈려 피 터지게 싸웠다.

대선 당시 엔엘엘은 선거 구도를 가른 주요 변수 중 하나였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엔엘엘과 정수장학회 등 노무현과 박정희를 붙들고 싸우는 사이 안철수의 새 정치는 무대 뒤로 밀려났다. 안철수가 어떻게 두 당 틈바구니에서 설 자리를 잃었는가는 소셜미디어 추이를 보면 잘 드러난다. 소셜미디어 연구가 강성혜씨 조사를 보면, 10월8일 엔엘엘 공방이 점화한 뒤 사흘째인 11일부터 트위터에서 안철수 점유율이 줄기 시작한다. 10월7일 박근혜(30.3%)-안철수(38.1%)-문재인(14.8%) 순이던 점유율은 17일엔 세 사람이 47.0%-18.7%-18.5% 순으로 변한다. 30%를 웃돌던 안철수의 점유율이 20%를 밑돌고 이후 문재인과 엇비슷한 점유율로 고착돼 갔다. 엔엘엘 공방으로 친박과 친노가 결집한 탓이다.

엔엘엘 파동의 최대 피해자는 국민이다. 공방 와중에 쥐꼬리 최저임금이 얼렁뚱땅 책정됐고,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이라던 기초연금 공약도 휴지 조각이 됐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처리는 표류했고, 전작권 환수를 연기하려는 꼼수가 진행됐다. 나라 틀을 다지고 국민 사는 형편을 나아지게 하는 문제는 뒷전이고 여야는 끊임없이 정쟁 이슈를 만들어내 국민을 선동했다.

엔엘엘 정국만큼 학계 일각에서 제기돼온 두 거대 정당의 적대적 공생을 실감나게 보여준 사건도 드물다. 최장집 교수는 지난달 내일 연구소 창립식 때 “보수·진보를 대표하는 것으로 가정되는 두 거대 정당들은 격렬한 대립관계를 갖는 듯이 나타나지만, 사실은 적대적 상호 의존을 통한 2자 지배구조를 구축하며 자신들의 특권적 지위가 보장되는 정당체제를 재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걸핏하면 색깔론과 지역감정을 동원하는 새누리당이야말로 낡은 정치구조 온존의 주범이다. 새누리당이 엔엘엘 전투에서 이겼을지 몰라도 전쟁에서도 이겼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엔엘엘 정국의 피해자이기만 한가? 그렇게 보기 어렵다. 지금의 민주당은 김대중과 노무현 이후 기득권을 지키려는 몇몇 패밀리의 파트너십 당에 불과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엔엘엘 공방 와중에 보인 민주당의 이해하기 어려운 정파적 행동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두 거대 정당의 적대적 공생에는 언론도 한몫하고 있다. 언론이 소재를 제공하면 정당이 이를 빌미로 정쟁을 확대하고 언론은 다시 증폭시킨다. 언론이 어느 한쪽을 비판하는 것도 결국은 애정 어린 충고, 잘 싸우라는 질책인 경우가 많다.

엔엘엘 논란은 낡은 정치구조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 정치를 새롭게 하려는 고민이 두 거대 정당 안에 없는 것은 아니다.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럽식 복지국가 체제를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 두 당 밖에선 그 실체가 매우 불분명하긴 하지만 안철수가 진보적 자유주의를 내세워 도전하고 있다. 진보정당들은 당명까지 바꿔가며 계란으로 바위 치듯 보수 정치구조를 깨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치의 모순이 극대화하면서 정치의 판을 새로 짜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를 위한 노력이 두 거대 정당의 안과 밖을 가릴 필요는 없다.

백기철 논설위원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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