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지난달 25일 오전 인사청문회 이후 90여일 만에 처음으로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기 위해 국회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한 직원이 머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김종구 칼럼] 김장수는 ‘꼿꼿장수’ 아니라 시류 좇는 ‘버드나무’
남재준은 증오를 품고있는 ‘보수 군심의 아이콘’
남재준은 증오를 품고있는 ‘보수 군심의 아이콘’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별명은 ‘꼿꼿장수’다. 하지만 그의 행보에서 대나무의 꼿꼿하고 맑은 향기를 맡기는 어렵다. 오히려 권력과 시류의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버드나무를 연상시킨다. 줄기를 꺾어서 옮겨 심어도 잘 살아나는 버드나무처럼 그 역시 참여정부에서 온갖 영화를 누리고 새누리당으로 옮겨간 뒤에도 승승장구하는 강한 생명력을 과시한다. 그에게는 ‘버들장수’라는 별명이 더 어울린다.
버드나무에 지조나 절개를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지만 명리와 권세를 좇는 중에도 최소한의 양심과 예의, 염치는 있어야 옳다. 그런데 김 실장은 그런 기대마저 깨뜨렸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가 조금이라도 용기를 냈다면 나라가 이처럼 불행한 갈등의 소용돌이에 휩싸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4성장군 출신이라는 명성이 아까운 비겁하고 용렬한 졸장부다.
엔엘엘(NLL) 파동의 한 축에 ‘김장수의 배신’이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남재준의 증오’가 자리하고 있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군에 있을 때부터 ‘보수 군심의 아이콘’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이념적 성향이 뚜렷했다. 참여정부와는 적지 않은 갈등도 빚었다. 그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무단공개라는 비이성적 행동을 한 밑바탕에는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적개심,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원한도 적지 않게 작용했으리라고 본다.
차돌에 바람이 들면 백 리를 날아간다고 했다. 원래 ‘비정치적’임을 자랑하는 군인일수록 정치에 뛰어들면 더욱 정치적이 된다. 그것도 정치를 제대로 배우지 않아 불안하고 수준 낮은 정치 행태를 보이기 쉽다. 남 원장은 그 표본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좌고우면하지 않는 직선적이고 비타협적인 기질이 정치와 만나면서 ‘돌격형 정치’라는 가장 위험한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육사 출신들의 안보라인 장악에서 비롯된 폐해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심각하다는 점이다. 사실 엔엘엘은 군의 처지에서 보면 밥그릇의 문제이기도 하다. 등거리니 등면적이니 하는 것은 곁가지일 뿐이다. 적과의 대치와 긴장이 존재의 근원인 군한테는 서해를 평화수역으로 만드는 것 자체가 못마땅하고 불편할 수밖에 없다. 군은 때때로 ‘젊은이의 피와 희생’이 있어야만(다만 적당히) 존재 의의가 부각되고 조직과 장비, 예산이 늘어나게 돼 있다. 군은 지금 과거를 빌려 미래까지 쐐기를 박는 생존권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그 선두에 남재준 원장이 있다. 육사 선후배들이 힘을 합쳐 좌충우돌하고 여기에 여권이 동조하면서 서해상의 평화는 영영 멀어져가고 있다.
군에 대한 문민통제는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지속된 화두였다. 참여정부에서는 한때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 기용까지 검토됐다. 이런 흐름에 남재준 원장 등 보수파 군인들이 느꼈을 불쾌감과 저항감이 얼마나 컸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상황은 바뀌었다. 이제는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아니라 오히려 ‘군에 의한 문민통제’로 가고 있는 형편이다. 박근혜 정권은 이 대목에서도 역사를 거꾸로 돌려놓았다.
남재준 원장이 육군참모총장 시절 ‘정중부의 난’이라는 말을 했는지를 두고 상당한 논란이 빚어진 적이 있다. 진위야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제 남 원장은 ‘무신의 난’ 주역이 됐다. 국정원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문제로 두 차례나 국회의 권능을 정면으로 무시하고, 국방부가 정치권의 대화록 열람을 코앞에 둔 시점에 국정원의 ‘대화록 유권해석’을 거들고 나선 것 등은 모두 국가의 기본질서를 무너뜨리는 쿠데타와 같다. 이는 물론 왕의 밀지와 전교가 있었기에 가능한 친위쿠데타다. 하지만 청와대와 여권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지금은 무신의 난으로 형성된 정국 주도권을 느긋이 즐기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들의 방약무인함은 언젠가는 독이 돼 돌아오게 돼 있다.
군은 탱자나무와 같다고 했다. 외적의 침입을 막는 울타리를 만드는 데는 가시가 무성한 탱자만 한 나무가 없다. 하지만 탱자나무로 대들보를 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이 정권은 탱자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얹었다. 그 탱자의 가시가 상식을 찌르고, 정치를 찌르고, 국민을 찌르고 있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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