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주 언론인
나이가 들어도 소위 ‘팬심’이 없으면 사는 게 재미가 없다. 누군가의 팬클럽이 되어서 살면 신이 나고 입속에 사탕 하나 문 것처럼 달콤하다. 어떤 사람의 말과 행동이 마음에 깊이 들어오고 그 사람의 사는 모습을 따라가지는 못할망정 마음에 새기면 든든해진다. 팬심도 신앙심의 일종이 아닌가 싶다.
최근 몇년 사이 마음 붙이고 정신적으로 기댈 만한 사람이 없었다. 불행했다. 지난 3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하고 나서 곧바로 그의 팬이 되었다.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교황 즉위 일성과 처음으로 한 일을 보며 바로 내가 찾던 사람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교황으로 당선이 필요한 77표를 얻는 순간 그의 옆에 있던 절친인 브라질의 클라우지우 우메스 추기경이 가난한 사람을 잊지 말라고 하였다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가난한 사람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고 아시시의 성인 프란치스코를 떠올렸고 세상의 많은 전쟁을 생각하고 가난과 평화의 상징이고 약자의 편인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름을 교황의 이름으로 정했다.
엊그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젊은 사제와 수녀들에게 고급 승용차를 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자동차는 꼭 필요한 것이지만 고급차를 탈 때마다 세상의 굶는 아이들을 생각하라고 했다. 뜨끔했다. 밥을 먹을 때마다 세상의 굶는 어린이를 생각하며 살지는 않았지만 음식물 쓰레기를 많이 버릴 때마다 누군가가 먹을 수 있는 것을 버리는구나 하며 부끄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팬심’이 발동하여 음식물 쓰레기 만들지 말자고 다짐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이 꽂힌 것에 수입의 대부분을 쓰는 경우가 많다. 하루 세 끼 라면만 먹어도 고급 핸드백은, 집은 없어도 차만은 나만의 것을 갖겠다는 것은 세계 모든 젊은이들의 특성이다. 취향이랄까 개성의 표현이며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가 다 다르기 때문에 수입의 범위 안에서 취향에 따라 무엇을 선택해서 돈을 쓰는가를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젊은 수녀나 사제도 요즘 젊은이들이기 때문에 다르지 않다고 본다. 교황의 이런 말씀에 충격을 받거나 내심 반발을 할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경우 성직자가 되었을 때의 초심이나 가장 낮은 곳에 있어야 할 자신의 신분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것은 분명하다.
어떤 사람이 수입의 대부분을 어디에 쓰는지 살펴보면 그 사람이 어떤 인생관을 가지고 있는지 그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있다. 얼마 전에 돈을 좀 많이 번 젊은 친구가 이런 점에 대해 명확하게 답변을 해주었다. 마음 가는 데 돈 갑니다. 마음은 갔는데 돈이 안 따라갔다면 그건 진정한 마음이라고 볼 수 없죠. 입으로 자선을, 공동체를 말하면서 실제로는 지갑을 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을 얼마나 자주 하는가보다 그 사람에게 얼마나 지갑을 열 수 있느냐가 사랑의 척도라고 단언했다. 주변에서 사제나 수녀가 차에 포도주에 골프에 고급품에 마음을 뺏기고 있는 모습을 더러 본 적이 있다. 가장 마음을 쓰고 사랑을 베풀어야 할 곳을 잊고 한눈을 판 것이라 할 수 있다. 돈을 쓰는 것을 보면 사람의 마음이 보인다. 맞는 말이다. 내 경우 먹는 데 가장 많은 돈을 쓴다. 식구들이나 친구들한테 맛있는 음식을 해 먹이거나 사주는 것은 내 마음의 표현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금 세계가 겪고 있는 것은 경제 위기가 아니고 인간의 위기라며 난민에 대한 국제적 무관심을 비판하고 양심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일, 동시대를 사는 인류 모두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불행에 책임을 나누어 가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애 형제애를 강조하고 있다. 참 오랜만에 듣는 인류애 형제애다.
지금 세계는 너나 할 것 없이 개인의 이기주의, 자신이 속한 단체의 이익이 우선이라는 착각 혹은 변명이나 오만으로 옳고 그른 것을 가리려 하지 않는다. 강대국은 강대국대로 작은 나라는 작은 나라대로 자국 이기주의에 빠져서 같은 인류라는 사실을 잊고 산다. 내일이면 잊을지 몰라도 한번씩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우쳐주는 사람을, 프란치스코 교황을, 내 시대에 만난 것이 행복하고 그의 팬인 것이 마음 든든하다.
김선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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