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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과거를 통한 미래 지배 / 구본권

등록 2013-06-30 19:16

“과거를 지배하는 자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 과거를 지배한다.” 이 강령 아래 정부 부처 진리부 기록국은 역사를 끊임없이 수정하는 일을 한다. <1984>에서 주인공의 임무는 현시점에서 맞지 않게 된 과거의 신문 기사 내용을 당의 노선에 맞아떨어지도록 일일이 수정하는 ‘기록 변조’다. 조지 오웰이 그려낸 빅브러더 지배의 전체주의 감시국가 모습이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은 무자비한 숙청을 자행했다. 스탈린과 함께 사진에 찍혔던 주요 인물이 숙청되면 소련 정부는 기록사진을 정교하게 수정해 그의 존재 자체를 없애버리는 역사 조작도 저질렀다.

500여년 조선왕조를 지탱한 힘으로 기록문화가 거론된다. 사관은 임금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낱낱이 기록했다. 임금은 사초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연산군이 무자비한 무오사화를 일으키고 비극적 종말을 맞은 것도 신하들의 꾐에 빠져 금지된 사초를 열람한 데서 비롯했다. 기록문화 중흥을 위해 노무현 정부는 역대 최대의 통치기록을 남겼고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을 제정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도 상세히 기록해 후대에 전달했다.

조지 오웰은 국내에서 각별한 대우를 받은 작가다. 1945년 펴낸 <동물농장>은 1948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번역본이 출판됐고 <1984>도 원작 발간 1년 만인 1950년 한글판이 나왔다. 전체주의를 비판한 반공작가로 여겨진 게 배경이다. 권력으로 역사 기록에 접근해 조작하고 정치적 목적을 위해 악용하는 야만행위가 소련과 <1984>의 독재국 오세아니아의 일만은 아니었다. 봉인되어온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에 새누리당과 국가정보원이 접근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왜곡해 전달한 의혹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과거 기록을 왜곡해 미래를 지배하려는 욕망이 <1984>의 빅브러더를 닮았다. 목숨을 걸고 역사 집필의 공정성과 신성함을 지켜온 왕정시대 조상 앞에서 민주정을 사는 수백년 뒤 후손으로 들 낯이 없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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