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통계, 그 허망한 숫자놀음 / 김영배

등록 2013-06-23 19:12

김영배 경제부장
김영배 경제부장
<한겨레>가 ‘권력에 춤추는 통계’라는 이름의 기획 연재물을 내보내기 시작한 것은 지난 18일부터였다. 통계라는 딱딱한 주제를 다뤘음에도 이번 연재물에는 회사 안팎으로부터 꽤 큰 반향이 있었다. 비판의 도마에 오른 관련 부처들의 반박이 있었지만, 국회 쪽에선 기사에서 다뤄진 사안을 쟁점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으며 통계에 얽힌 의심스러운 정황을 알려온 제보도 여럿 들어와 있다. 회사 안에선 기사의 내용 못지않게 일상적인 취재 동선을 벗어난 좀 새로운 형식의 취재 방식에 대해 관심을 표명한 이들이 많았다.

이번 기획기사의 착상과 구상, 취재와 게재로 이어진 시일은 매우 길었다. 이를 주도한 현장 기자가 경제부처를 출입할 때부터 갖고 있던 문제의식을 오래 간직하고 있다가 일상적인 지면 제작의 부담을 털어낸 기회를 잡아 경제부처 담당 기자와 수주간에 걸친 협업을 통해 결실을 이뤄냈다.

솔직히 말해, 담당 기자로부터 일종의 탐사보도 소재로 ‘통계의 왜곡 내지는 조작’을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구미가 확 당기지는 않았다. 현장 기자로 경제부처를 출입할 때 실업률이나 분배 지표 따위가 우리의 실상을 잘 반영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현실을 수치로 추상화한 통계의 원천적 한계나 결함으로 인식했던 터였다. 우리의 국격이 어느 정도 올라가 있고 이른바 선진국으로 분류될 만한 수준으로까지 발전해 있다는 평가를 받는 현실인데 설마 국가 통계를 비틀거나 거짓으로 만들까 하는 믿음도 갖고 있었다.

결과는? 국가 통계에 대해 갖고 있던 내 소박한 믿음과 헐렁한 인식 틀은 많이 깨져버렸다고 털어놓을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럴 정도로 취재 결과에는 놀라운 사연들이 많이 포착돼 있었다. 이미 보도된 대로 통계청은 지난해 대통령 선거 일정을 앞두고 집권 세력에 불리한 분배 지표(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통해 고소득층 가구의 소득치를 보정한 ‘새 지니계수’)를 애초 공표한 일정대로 발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강한 의구심을 샀다. 또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서두르는 정부의 행보에 반대하는 대규모 농민 시위를 의식해 특정 농산물 수입량 발표를 미루는 등 통계를 권력의 입맛에 맞추려 했다는 의심을 산 사례도 여럿 드러났다. 낙하산 기관장 취임에 반대한 어느 공공기관은 특정 통계자료의 작성 주체에서 배제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통계는 국가 운영의 인프라(하부구조)로 일컬어진다. 국가의 현재 상황과 발전 과정을 보여주고 비전을 설계하는 데 필수적인 정보라는 점에서다. 통계(statistics)의 어원이 ‘국가(state)와 관련된 정보 수집’에서 비롯됐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통계는 기업과 개인의 의사 결정과 전략 수립에도 중요한 기초 정보로 여겨진다. 잘못 작성되거나 오도된 통계는 사회 전반에 매우 심대한 폐해를 불러올 수 있는 것임은 여기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통계청을 비롯한 여러 기관들에서 작성된 일부 수치에 왜곡 내지 조작의 흔적을 엿보았다고 해서 국가 통계 전반을 불신할 수는 물론 없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기초 통계 조사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의 손때를 거친 숱한 통계 자료는 여전히 소중한 국가의 자산일 터이다. 다만, ‘권력’에 대한 평판에 영향을 끼칠 주요 지표를 일정 조정 등을 통해 유리한 쪽으로 주무르는 이른바 ‘마사지’ 작업은 언제든 이뤄질 수 있다는 경각심은 필요해 보인다. 아울러 작성된 통계치를 언론 등 외부에서 자의적이고 편향적으로 해석하는 일도 자제돼야 할 것이고.

김영배 경제부장 kimyb@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