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정치부 기자
지난 3일 오후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강당에서는 ‘안철수 현상과 민주당의 미래’라는 주제로 학술토론회가 열렸다. 정치적 성격의 토론회는 대부분 지향점이 분명한데 이 토론회는 제목만으로는 안철수 쪽인지 민주당 쪽인지 알기가 어려웠다. 축사도 민주당 최고위원인 조경태 의원과 안철수 의원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최장집 이사장이 나란히 했다. 주최자인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도 양쪽과 다 가깝다. 그는 대선 전에는 안철수 진영의 국정자문단에서 활동했으며, 대선 후에는 민주당의 대선평가위원장을 맡았다.
토론회 뒤풀이를 겸해 열린 저녁 자리에 안철수 의원이 참석함으로써 모호함이 어느 정도 풀렸지만, 안철수 의원과 민주당의 중첩적이고 복합적인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안 의원이 뒤풀이 자리에 못 간다고 했으면 민주당의 고위인사가 초대받았을지 모른다.
지난달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발을 들여놓은 안 의원의 앞길에는 다양한 선택지가 놓여 있었다. 첫째는 지난 대선 때 협력했던 민주당과 결합하는 방식이다. 역사적 정통성과 기간 조직을 가진 민주당과의 결합은 그가 목표로 하는 2017년 대선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일 수 있다. 내년 지방선거를 지휘해 이긴다면 그의 당내 입지는 누구보다 튼튼해질 것이다.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인 그의 정치 노선이나 이념에 가장 가까운 현존 정당이 민주당이기도 하다. 둘째는 ‘작지만 중요한’ 진보정당의 길이다. 양극화 시대에 진보적 정책에 대한 요구는 갈수록 커지는 데 비해 진보세력은 오히려 형해화되고 있는 마당이다. 대중적 지지도가 강한 그가 진보정당 노선을 취한다면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정치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셋째는 새누리당에 합류하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그의 노선과 성향이라면 새누리당에서도 얼마든지 수용이 가능하다. 여권에서도 차기 대선주자가 마땅치 않다는 점에서 안철수 영입론을 주장하는 인사들이 있다.
안 의원은 위의 세 가지 길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에 대해서는 “적대적 공생관계”라고 공격하면서 “진영의 장막을 걷어라”고 각을 세웠다. 최장집 이사장이 꺼낸 ‘노동중심 진보정당’론에 대해서도 “진보정당을 만들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대신 그는 “다양한 요구가 많은 사회에서 양당이 모두 그 요구를 담기는 힘든 … 제3섹터”에 있는 제3당의 길을 가고 있다.
하지만 안철수 신당은 과거의 제3당과는 내용적으로 많이 다르다. 정주영의 통일국민당이나 이인제의 국민신당, 문국현의 창조한국당은 무당파가 기반이었으며, 영남과 수도권이 중심이었다. 이에 비해 안철수 세력의 주력은 무당파보다는 야권 지지층이며, 지역적으로는 호남이다. 정치판 전체 또는 보수기득권층과의 싸움이 아니라 당장 야권의 주도권을 놓고 민주당과 맞대결을 벌일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안철수 신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이 출범할 때와 처지가 비슷하다.
새 정치의 기치를 내건 안 의원이 열린우리당처럼 민주당을 완전히 패배시킬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열린우리당 때와 달리 지금은 탄핵 역풍 같은 유리한 외부 조건이 없으며, 민주당의 내부 상황도 다르다. 옛 민주당은 ‘난닝구’ 차림으로 ‘머리끄덩이’를 잡는 구태의 상징이자 타도의 대상이었다면 현재의 민주당은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들이 탄탄하게 포진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나름대로 혁신을 추구하는 정당이다. 인기가 없더라도 하루아침에 무너지기 어렵다. 자칫 양쪽이 상당 기간 양립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양쪽이 얼마나 미래지향적이고 내실 있는 경쟁을 벌이느냐에 야권 전체의 장래가 달렸다.
김종철 정치부 기자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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