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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수사 개입 논란 철저한 규명이 필요하다 / 정정훈

등록 2013-06-04 19:23수정 2013-06-10 16:58

정정훈 변호사
정정훈 변호사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로 하였으나, 법무부가 일주일 넘게 결정을 미룸으로써 구속영장 청구를 사실상 막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대검찰청에 공직선거법과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를 모두 적용해 원 전 원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는 내용의 중간보고를 하였고, 채동욱 검찰총장은 이를 황교안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했으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법리 검토를 다시 할 것을 주문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법무부는 “보고는 받았으나 장관의 지휘권 행사는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수사지휘는 없었다고 하지만, 공직선거법 적용에 대한 법리 검토를 다시 하라는 “의견” 제시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는 매우 중대한 사태다. 검찰의 기소와 구속영장 청구는 법무부 장관의 결정이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사안이 아니다. 그럼에도 구속영장 청구가 지연되고 있다면, 이는 법무부 장관이 “의견” 제시라는 형식을 통하여 사실상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과거 임채진 검찰총장은 퇴임식 당일 “수사지휘권 발동이 강정구 교수 때 한번밖에 없다는 것은 천만의 말씀이다. 늘은 아니지만 문건으로 발동되는 게 있으며, 광고주 협박사건이 그랬다”고 말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만약 법무부 장관의 공직선거법 적용에 대한 “의견” 또는 “주문”이 대선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을 차단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에 따른 것이라면, 이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규정한 검찰청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따라서 구속영장 청구가 지연되는 이유가 검찰 내부의 이견 때문인지, 아니면 법무부 장관의 “주문” 때문인지 그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 법무부 장관의 행동은 직무집행에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 해당하여 헌법에서 정한 탄핵 사유가 될 수도 있다.

원 전 국정원장의 혐의는 국가정보원의 대통령 선거 개입과 국내 정치적 사안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것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혐의는 민주공화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며, 그만큼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엄중하게 요구되는 사안이다. 혐의 사실이 현직 대통령의 선거 과정에 관한 것이고 정치적 사안인 만큼 법무부 장관은 더욱 신중해야 했다. 법무부 장관의 “의견” 개진은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고쳐 맨 격이다. 이제 국민들은 갓끈을 고쳐 맨 이유를 충분히 따져 물을 수 있고, 따져 물어야 한다.

이번 논란을 통해서 검찰총장도 그 본연의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제까지 검찰과 법무부는 초록은 동색이고 가재는 게 편인 그런 관계였다. 법무부의 주요 보직 대부분이 검찰 출신 일색이다. 이런 검찰과 법무부의 관계를 고려하면, 구체적 사건에 대한 지휘를 ‘안 해서’가 아니라 ‘할 필요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굳이 지휘라는 딱딱한 형식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웃으면서 뜻을 같이할 수 있는 관계였다. 구체적인 사건에서는 검찰총장만을 지휘한다는 규정이 사문화된 이유는 이러한 관계가 반영되어 왔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번 구속영장 청구 논란이 보도까지 되었다면, 적어도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검찰총장이 정치적 중립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법무부 장관에게 지휘권을 법적으로 부여하면서 구체적인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검찰청법 제8조)하도록 한 것은 검찰총장을 안전판으로 해서 검찰의 중립성·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이번 논란을 통해 검찰이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지 국민들은 주목하고 있다.

정정훈 변호사

[관련영상] 국기문란 국정원, 개혁될까? (한겨레캐스트#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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