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섭 오피니언부장
1747년 출판업자 앙드레 르브르통이 34살의 철학자 드니 디드로를 만났을 때 그의 머릿속에 들어 있던 구상은 소박했다. 당시 영국에서 잘 팔리던 두 권짜리 백과사전을 프랑스 사정에 맞게 옮기고 살을 덧붙여 펴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편집 책임이 일단 디드로에게 맡겨지자 사태가 달라졌다. 앎의 야심으로 들끓던 디드로는 단순 번역 사업을 지상의 모든 지식을 쌓아올리는 거대한 정신의 건축공사로 바꾸었다. 무신론을 퍼뜨린다는 이유로 뱅센 감옥에 갇히기도 했던 그는 당대의 불온한 지식인을 모두 끌어모았다. “파렴치를 타도하라”고 외쳤던 볼테르, ‘인간 불평등의 기원’을 밝힌 루소를 비롯해 143명이 집필자로 참여했다. 1751년 제1권이 발간됐다. 사상의 폭약을 내장한 사전은 곧 탄압을 불렀다. 판매금지가 뒤따랐다. 출간 작업은 군사작전처럼 은밀히 진행됐다. 1772년 마침내 28권짜리 <백과전서>가 완간됐다. 이 대저작과 함께 유럽의 18세기는 빛의 세기, 계몽의 시대가 되었다.
1772년판 <백과전서>는 제1권에 권두화를 실어 완간을 자축했다. 이 그림의 한가운데에 머리에서 발목까지 베일로 온몸을 감싸고서 사방으로 빛을 발산하는 여신이 서 있다. 바로 진리의 여신이다. 그 오른편에서 베일을 잡아 벗겨내는 두 여신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이성과 철학이다. 이성과 철학의 힘으로 베일을 걷어내면 진리가 더욱 밝게 빛나 어둠을 일소할 것이라는 믿음이 담겨 있다. 계몽정신의 요약판인 셈이다.
계몽은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백과전서>가 완간되고 12년 뒤인 1784년 <월간 베를린>은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해 11월호에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글이 실렸다. 그 글이 바로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이다. 첫머리에서 칸트는 계몽에 대한 유명한 정의를 내렸다. “계몽이란 미성숙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면 미성숙이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이 이끌어주지 않으면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미성숙이다. 몽매한 세상을 빛으로 밝힌다는 계몽의 일반적 정의에서 한발 더 나아가 칸트는 민중의 자기 계몽을 이야기했다. 그리하여 칸트는 다음과 같은 표어를 제시했다. “과감히 알려고 하라!” “너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키워라!”
칸트의 계몽이성에는 낙관주의가 깔려 있다. 그러나 이 낙관주의는 뒷날 커다란 도전을 맞는다. 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으로 망명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우울하게 선언했다. “계몽은 공포를 몰아내고 인간을 주인으로 세운다는 목표를 추구했다. 그러나 완전히 계몽된 지구에는 재앙만이 가득하다.” 두 사람은 나치의 광기와 홀로코스트 앞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계몽이 재앙으로 떨어진 이유를 찾았다. ‘이성의 도구적 사용’이 문제로 떠올랐다.
젊은 날 칸트의 계몽주의를 냉소했던 미셸 푸코는 1983년 가을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푸코는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칸트의 말에 눈을 돌렸다. “이성의 공적인 사용만이 계몽을 가져온다.” 공론장에서 양심과 인격을 걸고 시대의 문제를 이성적으로 따져보는 것이 칸트가 말한 이성의 공적인 사용이다. 도구적 이성 사용과 대비되는 이 공적이고 보편적인 이성 사용으로 시대를 비판함으로써 우리는 시대와 우리를 함께 성숙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칸트의 그 길에 푸코는 공감을 표했다.
<백과전서>로 계몽의 길을 닦은 디드로가 태어난 지 올해로 꼭 300년이 되었다. 이 앎의 전사의 눈으로 보면 근대의 격동은 계몽이성이 난파의 위험을 겪으며 벌인 계몽의 오디세이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일베니 종편이니 하는 반계몽의 검은 그림자들이 발호하는 오늘, 우리 안과 밖의 어둠을 밝히는 계몽의 힘을 되새긴다.
고명섭 오피니언부장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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