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티브이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이 최근 인기를 끌면서 각종 패러디를 낳고 있다. 지난달 일본에서 방영을 시작한 이 만화는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되면서 포털 검색어 상위 순번에 여러 차례 오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정체 모를 거인들이 나타나 인간을 먹어치우면서 절멸의 위기에 빠진 인류가 이들과 맞서는 이야기다. 거인을 피해 인류는 50m의 거대한 벽을 쌓고 살아가지만 100년 뒤 더 큰 거인이 성벽을 넘어와 무차별적으로 인간을 살육한다. 애초 2009년 일본에서 만화책으로 발간돼 인기를 모았다.
사람을 잡아먹는 거인 이야기가 성인들한테까지 화제가 되는 건 최근 우리 사회의 삭막한 현실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정체불명의 거인은 을을 마구 짓밟는 갑이자, 노동을 끊임없이 착취하는 자본이고, 동물을 멸종 위기로까지 내모는 인간일 수 있다. 인턴 여성을 짓밟은 고위 공직자일 수도 있다.
<진격의 거인> 패러디 중에선 <진상의 거인>이 압권인데,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문을 다룬 것이다. 한 시사만화가가 그린 네 컷 만화에서 술자리 참석자들은 돌아가며 “식당 아주머니인 줄 알고 만져” “룸살롱에선 자연산이 인기예요” “아나운서 되려면 다 줘야”라고 말한다. 각각 최연희 ·안상수·강용석 전 의원의 성희롱 발언을 빗댄 것이다. “못생긴 마사지걸이 서비스 좋지”라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마사지걸 발언’도 나온다. 마지막엔 “조무래기들”이라고 외치며 ‘진상의 거인’이 술집 벽을 넘어 등장하는데, 그의 몸엔 ‘사상 초유 정상외교 수행 중 글로벌 성추행’이라고 적혀 있다.
만화가 더 눈길을 끄는 건 거인에 맞서는 인간의 처절한 사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거인의 침략 때 어머니를 눈앞에서 잃은 주인공 에렌 예거는 군에 입대해 모든 거인을 없애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살아간다. 과연 우리 주인공은 이 세상의 ‘거악’을 물리치고 수많은 을과 노동자와 동물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
백기철 논설위원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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