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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노무현 대통령 4주기의 단상 / 박창식

등록 2013-05-21 19:17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오는 23일은 노무현 전 대통령 4주기 기일이다. 엊그제 서울광장에서 추모 문화제가 열렸으며, 기일에는 봉하마을에서 추도식이 열린다. 올해는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 편안하고 여유가 깃들어 보인다. 3년 탈상이 지났으니, 이제는 슬픔보다는 앞날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 아닐까.

되돌아보면 노 대통령은 학습하고 연구하는 것을 즐긴 정치인이었다. 원외 인사 시절 지방자치연구소를 만들어 지방분권 정책을 다듬었다. 대통령 때는 탈권위주의 국가운영을 연구했고, 장기 사회정책으로 비전 2030을 세우도록 했다. 동북아 시대론 같은 국제질서 담론도 제시했다. 대통령 퇴임 뒤에는 ‘진보주의 연구’라는 주제로 새로운 노선체계를 정립하고자 노력했다. 노선을 연구하고 세워나가는 데 굉장한 관심을 보인 지도자였다.

정치에서 이론의 역할은 막중하다. 보수정치는 권력과 돈으로 사람들을 묶어 세울지 몰라도, 진보개혁 정치는 이론과 가치를 제시해야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 그런데 외국이든 우리나라든 현실 정치인들은 기본적으로 이론에 대한 관심이 적다. 민원인을 만나고 표를 챙기고 하느라 너무 바쁘다. 이해관계를 절충하고 거래하는 것을 정치의 전부인 듯 여기기도 한다. 2008년 미국 민주당의 재건을 위한 이론서 <더 플랜>을 집필한 람 이매뉴얼과 브루스 리드는 ‘광란의 정치꾼들이 정치 제일주의를 기치로 이끌어가는 당파적 정치를 극복하자’고 질타했는데, 미국 풍토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 야당사를 보면 이론은 결국 큰 인물 중심으로 정리되었다. 일찍부터 대중경제론을 집필하고 햇볕정책과 민주적 시장경제론 등을 연구한 김대중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결국 큰 지도자가 노선을 제안하고, 학습하도록 권유하며 이끌어왔던 셈이다. 노 대통령도 김 대통령을 한 시대의 사상적 지도자라는 관점에서 존경했다.

지금 민주당의 존재감이 약한 데는 모호한 노선 탓이 크다. 야당은 여러 가지 이론 문제에 부닥쳐 있다. 무엇보다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욕구 변화를 재평가하면서 연합정치와 정당 대의제 등을 새로 연구해야 한다. 안철수 의원 세력과 진보정당의 재편 등을 고려할 때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정책분야별로는 북한 핵보유가 현실화된 가운데 평화 담론을 새로이 벼리는 문제를 비롯해 쟁점들이 수두룩하게 널려 있다. 그런데 강력한 지도자가 없다 보니 이론 문제가 마냥 방치되는 느낌이다. 노선 연구 모임도 많지 않다.

야당 정치인들이 이론이 없으면 값싼 보수 담론에 휘둘리기 쉽다. 정치인들이 인지도 올리기에 급급해 종편 출연을 기웃거리는 일이 한 예다. 공적 사명으로서의 정치가 아니라 출세 수단으로서의 정치로 흐르기도 쉽다.

2009년 이해찬 전 총리 등 몇몇 인사가 노 대통령 기념사업으로 미국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을 본떠 ‘노무현 학교’를 세우자고 제안한 일이 기억난다. 케네디스쿨(케네디 공공정책대학원)은 공공정책학, 국제관계학, 경제학, 정치학 분야의 석사와 박사 과정을 제공하며 다양한 학문을 연구한다. 이 전 총리 등은 대학원대학교를 만들어 연구와 교육을 강화하고, 추모와 문화사업은 학교의 한 부서 정도에 맡기자고 했다.

결말은 대학원대학교보다는 지금의 노무현재단을 큼직하게 세워 대중사업에 치중하는 쪽으로 났다. 노 대통령의 노선은 독특한 스펙트럼에 놓여 있다. 진보정당보다는 중도적이며 일부 정책에선 지금 민주당보다 진보적이다. 그것을 진보적 자유주의라고 이름 붙여도 좋겠다. 당시 연구기관을 세워 노무현 정부 노선이라도 잘 정리해두었다면 여러모로 쓸모가 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도 든다.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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